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의 저서 ‘원효에서 다산까지’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를 인용해 시인과 정치가의 부정(否定)의 방식을 비교한 대목이 있다. 요약하자면 정치가의 부정은 ‘자기 것을 옹호하려고 다른 것을 배척하는 부정’이라면, 시인의 부정은 ‘차이를 긍정하기 위해 모든 고착적인 표상과 관념을 타파하는 창조적 부정’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요즘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상황을 보면 문인과 정치가의 부정의 방식에 과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약 없이 표류 중인 동아시아문학포럼 얘기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은 갈등으로 얼룩진 세 나라의 과거사를 딛고, 함께 살 이웃으로서 공동의 미래와 평화 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문학의 역할을 고민하자는 취지로 세 나라 작가들이 출범시킨 행사다.
2년마다 순회 개최를 원칙으로 2008년 서울에서 1회 대회가, 2010년 일본 기타큐슈에서 2회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3차 대회는 개막일을 불과 3주 앞두고 중국 측이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를 하면서 포럼 개최는 무산됐고 올해도 끝내 재개되지 못하고 새해를 맞게 됐다. 당시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자 여론의 반발과 참여 작가들의 안전 보장을 우려한 중국작가협회의 결정이었다.
현재 한중일 세 나라의 갈등은 대부분 지난 세기의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비롯한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세 나라의 작가들도 결국은 제 나라의 국민이기에 이런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국민과 국경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는 상상력과 비전을 제시할 이들이기도 하다. 그것이 문학의 힘, 문학의 사명 아니던가? 내년에는 동아시아문학포럼 재개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