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1954∼)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날이 있다
아이에게 풍선을 불어 묶어주려다
갑자기 바람구멍이 열리자
풍선이 갯벌 위로 끌려 날아간다
무슨 말을 저리 온몸으로 하나싶어 문득 소름 돋는다
열려버리는 바람구멍
묵은 굴레를 하나도 풀지 못한 채
입김처럼 그것이 사라지는 날이 있다
그 사이 나는 얼음장처럼 얼다 녹는다
색색의 풍선이 떠있는 바다
또 하나 풍선이 터지면
부끄러운 입술 하나가 다물어지는 걸까
풍선 속에 하나 둘씩 별을 묶던
여기, 마음은 그때 가난한 밤을 위한 묵념으로 흐른다
말이 나를 끌고 멋대로 날아가도
기절할 정도로 좋았던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인데
아직도 풍선을 불고 있는
슬픈 입술
입으로 부는 풍선과 입으로 떠드는 말을 병치시켰다. 풍선을 입술로 살짝 물고 양손 엄지와 검지로 살포시 누른 채 후후! 바람을 불어 넣어 부풀린다. 언제까지 풍선을 불까. 거죽이 팽팽해지도록 최대한 크게 부풀리고 싶지만 한계를 넘으면 빵 터진다. 풍선을 부는 아빠나 보는 아이나 조마조마하다. 드디어 풍선을 다 불어 주둥이를 묶으려는 순간, 아이가 손뼉을 치며 기뻐하려는 순간, 풍선을 놓친다. 로켓처럼 발사돼 갯벌에 떨어져서 푸르릉푸르릉 제풀에 끌려가는 풍선. ‘무슨 말을 저리 온몸으로 하나!’
바닷가에서 아이에게 풍선을 불어주다 놓친 경험을 모티브로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시다. 떠드는 즐거움에 취해 말에 이끌려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살아왔던가. 말이 많다 보니 지나치게 부풀리다 묶는 걸 놓친 적도 있었지. 말이 다른 데로 새어버렸지. 애먼 데로 튄 말, 핀트가 안 맞는 말에 어색하게 얼어붙었지. 아, 허풍선이! 입김처럼 사라져버린 말, 말, 말들! ‘풍선 속에 하나 둘씩 별을 묶던’, 말 한 마디 한 마디, 시 한 구절 한 구절에 진실과 아름다움을 새겨 넣던 시절도 있었건만. 겉만 번드르르한 말, 기교만 승한 시! 바다 위에 내가 불어버린 색색 풍선들이 떠다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