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위한 다양한 취업·창업 지원 프로그램
사회 전반적으로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장년층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창업을 돕는 SK텔레콤의 ‘브라보! 리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일경, 김종선, 유승균 사장과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이준서 매니저(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가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 초 통신장비 부품업체 아이엠기술을 창업한 유승균 사장(53)은 아직도 20년 이상을 다닌 직장에서 퇴직하던 2년 전의 절박했던 상황을 잊지 못한다. 가족 모두가 한창 돈이 필요할 때였지만 기계공학 박사까지 받은 가장은 조직에서 벗어나자마자 기댈 곳이 없었다. 한동안은 이제껏 모은 돈을 기반으로 자영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시 신발 끈을 조인 그는 차근차근 창업 준비에 나섰다.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탐색하고 함께 제품 개발이 가능한 동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SK텔레콤이 만 45세 이상의 중장년층 세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창업을 지원하는 ‘브라보! 리스타트’ 프로그램과 만나게 됐다. 》
창업 3년 미만의 스타트업 가운데 경쟁력 있는 사업 아이템을 선정해 2000만 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창업 보육을 돕는 이 프로그램은 유 사장에겐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청년 창업을 위한 프로그램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중장년층을 위한 창업 보육 프로그램은 절대 부족했다. 꼼꼼한 심사과정을 통과한 그는 10개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됐고 내년도 첫 상용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게 된다.
20년 이상을 정보기술(IT) 기술자로 일한 김일경 허브앤스포크 사장(49)은 ‘브라보! 리스타트’를 통해 시제품 제작은 물론이고 판로 개척까지 도움을 받은 경우다.
그가 구상한 ‘스마트 짐 보드’는 게임을 손으로 조작하는 대신 에어보드 위에서 발로 뛰면서 운동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목적 엔터테인먼트 기계다. 수억 원에 이르는 개발 비용도 문제지만 이후 안정적인 제품 판로와 대기업과의 협력이 고민이었다.
SK텔레콤은 김 사장이 개발한 제품이 자사의 ICT를 기반으로 하는 헬스케어 등의 신사업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연구개발(R&D) 지원과 함께 이후 사업 협력을 제안하고 나섰다.
“포기하는 순간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경험과 지식이 ‘제로(0)’로 돌아가지만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나 꾸준하게 자신의 꿈을 갈고 닦으면 반드시 기회는 찾아옵니다.”
45세 이상 중장년층 일자리 만들기 본격화
SK텔레콤의 창업 지원 사례처럼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중장년층의 일자리 창출 및 계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는 탓도 있지만 사회적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중장년 인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의 경쟁력까지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과 독일 등 산업 선진국들은 적어도 20년 이상의 현장 경험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어떻게 대우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반면 우리는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깨닫고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단계다. 이에 따라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중장년층 인력 자원을 산업 현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와 제도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다.
기존에 퇴사한 인력을 다시금 일터로 불러들이는 제도도 있다. 이마트는 계산 담당 직원이 퇴직한 뒤에도 근무 능력을 갖췄을 경우 이들을 재취업시키는 제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마트는 이들의 업무 역량과 서비스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재고용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CJ는 최근 만 55세 이상의 장년층 퇴직자를 대상으로 ‘CJ 시니어 리턴십(직장 복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은퇴자를 위한 여러 일자리 제도
정년이 지난 은퇴자에 대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노력도 속도가 붙고 있다. 기존에는 이를 ‘은퇴자 재능 봉사’ 방식의 사회공헌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지닌 현장 인력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시장 교란 세력을 감시하는 임무를 지닌 ‘시니어 자본시장 서포터스’ 제도를 새롭게 꾸렸다. 인터넷이나 증권방송 등에서 활동하는 시장 교란 세력을 감시하는 일을 은퇴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KT는 고용노동부와 손잡고 올해 초부터 민간기업 중 처음으로 은퇴자를 위한 사회공헌 일자리 1000개를 3년 내에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10만 명의 은퇴자에게 ICT 활용 교육을 하고 1만 명에게 재능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사실 중년 일자리 문제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은 40대 이상의 여성 근로자들이다. 특히 20, 30대에는 직장을 다녔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들의 일자리 복귀에 알맞은 프로그램이 바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다.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고용은 물론이고 4대 보험 가입, 차별 없는 임금과 복리 후생 등이 보장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IBK기업은행은 8월 109명의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뽑아 영업점에 배치했다. 아직은 은행권에서 근무하다 출산육아 등으로 퇴직한 여성 인력에게 우선 기회를 부여했지만 점차 문호를 넓힐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내년 상반기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2000개를 만들어 경력 단절 여성과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층 고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도 ‘워킹맘’과 중년 구직자를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를 도입했다.
공공부문도 시니어 그룹의 일자리에 집중
장년 근로자 고용 확대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확대된다. 고용노동부는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는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를 재취업이나 창업을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 센터로 개편할 계획이다. 또 전문직 퇴직자들이 사회적 기업 등에서 지식과 재능을 나눌 수 있도록 사회공헌 일자리에 대한 지원도 늘려 나간다.
경제단체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한상의와 중기중앙회 등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경제단체와 노사발전재단이 운영하는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가 대표적이다. 또 ‘장년인턴제’도 만 50세 이상 구직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로 확대가 추진된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