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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제 철거 102년만에… 청주읍성 되살아났다

입력 | 2013-12-12 03:00:00

전체 성벽 중 서쪽 35m 복원
성돌 650여개 모으기 등
시민―문화단체 자발적 참여




일제강점기 당시 사라졌던 청주읍성 복원사업이 3개월여의 공사 끝에 11일 준공됐다. 이번 복원은 지역문화단체와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 그 의미가 더 각별하다. 청주시 제공

일제강점기 당시 도시정비사업을 명목으로 철거됐던 ‘청주읍성’이 100여 년 만에 일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청주시는 11일 오후 상당구 중앙공원 서측 출입구에서 ‘청주읍성 복원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날 복원된 성벽 구간은 중앙공원 서측 출입구부터 YMCA까지 35m. 2011년 청주시가 충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벌여 성벽 위치와 폭이 확인된 곳이다. 읍성 터가 청주시내 한복판에 있어 전체를 복원하기 어려워 이 구간만 되살렸다. 복원 전 이곳에는 화단이 조성돼 있었다. 청주시는 복원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의 고증을 바탕으로 성벽 높이는 원래의 지반이었던 땅속 1.2m에서 시작해 지상 3.6m 등 총 4.8m로 쌓았다. 조선시대 청주읍성과 최대한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성로(城路)는 진흙강회(剛灰) 다짐을, 바깥쪽은 흙다짐을 했다.

이번 청주읍성 복원은 관(官) 주도가 아닌 성돌모으기운동본부와 지역 문화단체, 시민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청주시는 읍성 복원을 위해 2월 성벽 발굴을 시작했다. 3월에는 청주문화원과 문화사랑모임, 서원향토문화연구회, 충북문화유산연구회 등 4개 단체가 ‘청주읍성 성돌모으기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이어 5월에 실시설계를, 6월에는 성벽 발굴조사를 마쳤다.

이후 청주읍성 복원에 원래의 성돌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하고 성돌 찾기에 나서 800여 개의 성돌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상당구 수동에 있는 대한불교수도원에서 성돌 539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성돌은 1960년대 무심천 제방공사 때 나온 것을 가져온 것. 수도원 측이 이 성돌을 흔쾌히 기증하는 등 모두 650여 개의 성돌이 모였다. 청주시는 이 성돌을 이용해 9월 7일부터 청주읍성 복원 공사를 시작해 3개월여 만에 청주 역사의 한 부분을 되찾았다.

이날 준공행사에서는 성돌 모으기와 읍성 복원에 공헌한 류귀현 성돌모으기운동본부장 등 6명에게 조선시대 교지 형태의 감사장이 전달됐다. 또 충청도병마절도사명기(忠淸道兵馬節度司命旗) 등 5개의 깃발을 읍성에 게양했다. 이 깃발은 문화재 위원들의 고증과 단청장, 궁시장, 배첩장인 지방무형문화재와 지역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조선후기 성벽에 사용하던 깃발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나기수 청주시 문화관광과장은 “청주읍성 복원은 조선시대 각종 문헌과 관련 전문가들의 충분한 고증을 통해 되살렸다”며 “단순히 읍성 복원을 넘어 단절된 청주 역사의 정체성을 회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 성종 18년(1487년)에 완공된 청주읍성은 길이 1783m로 사대문을 두고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일제의 도시정비사업으로 1911년 강제 철거됐다. 당시 일제는 철거 과정에서 나온 성돌을 하수구 축대 정비나 도로 건설에 사용했다. 또 청주읍성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읍성 탈환 승전지이다. 청주성은 1592년 7월 왜군에 빼앗겼으나 의병장 조헌 박춘무와 승병장 영규 대사가 의병과 승병 3500여 명을 규합해 같은 해 8월 2일 탈환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