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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경영 지혜]권력 견제하는 강한 이사회, CEO에겐 毒 아닌 藥

입력 | 2013-12-12 03:00:00


2008년 여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자동차 3사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 이 ‘빅3’의 최고경영자들은 대규모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위해 의회 청문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의회가 있는 워싱턴까지 오면서 각각 왕복 운항 경비만 2000만 원이 넘는 회사 소유의 제트기를 탔다. 청문회장에서도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주제에 미안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인 것처럼 얘기했다.

안 그래도 고액 연봉을 받는 기업인들의 행태가 못마땅했던 의회 의원들과 대중은 분노했다. 당장 제트기부터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경영자들은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사기업을 살리기 위해 피 같은 세금을 부어야 할 미국 시민의 따가운 시선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싼 자가용 제트기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었다. 불같은 여론에 밀린 이들은 다음 번 청문회 때는 800km가 넘는 길을 자동차를 타고 와야만 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 국가의 최고지도자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둔감하기 쉽다. 평범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오만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곤 한다. ‘승자의 뇌’란 책을 쓴 더블린대 신경심리학과 교수 이언 로버트슨은 이 같은 현상을 ‘권력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로버트슨 교수에 따르면 권력은 뇌 안의 화학작용을 바꿔놓는다. 장점도 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와 좌뇌 전두엽의 활동을 촉진해 집중력이 좋아지고 용감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우뇌 전두엽의 활동은 둔화시킨다. 자가 진단과 자각 능력이 약해진다. 외부의 변화에는 민감해도 자기 자신의 변화는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권력을 쥔 자기 자신부터 망쳐놓을 수 있는 힘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에선 최고경영자를 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를 조직하는 것이 최고경영자 본인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