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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대원군을 꿈꾸다 추락한 장성택

입력 | 2013-12-12 03:00:00

미디어 동원한 전국 성토대회… 단순 분파 사건 아닌 듯
장성택의 세력 확대에 김정은 위기의식 느껴 선수 쳤다는 분석
나이 어린 백두 혈통으로서 고모부에 의존하면서도 의심의 끈 놓지 않았을 것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의 결정문을 보면 장성택의 가장 큰 죄목은 우리 형법의 용어로 ‘내란음모’에 해당한다. 결정문은 장성택 사건에 대해 “당의 유일적(唯一的)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反黨)반혁명적 종파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유일적 영도는 바로 김정은을 지칭한다.

북한에서 자기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중죄(重罪)에 해당한다. 김정일 시대에도 김정일을 제외하고 자기 사람을 챙긴 사람은 장성택이 유일했다. 김정일에게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넘어오는 과도기에 장성택은 군과 당 그리고 무역 외교부문에 자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반당반혁명 종파사건이라는 규정은 장성택의 측근들이 분파(分派)를 형성해 김정은의 통치력을 약화시킬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는 범죄로 쿠데타나 암살을 상정해 볼 수 있지만 북한에서 쿠데타나 역모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북한 관영 선전매체와 주민을 동원해 전국에서 격렬한 성토대회를 여는 것을 보면 단순한 종파사건은 아닌 듯하다. 이 사건 직후 중국에 가서 장성택의 측근을 접촉하고 온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는 김정은이 장성택의 세력 확대와 외화자금 장악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성택이 세력을 키워 자신을 밀어내거나 허수아비로 만들려 한다는 공포와 분노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으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첫째, 직접 최고 통치자로 나선다. 둘째, 백두혈통이 아닌 곁가지여서 세가 불리하면 김정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이 섭정 대원군으로 군림하는 방안이다.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는 음모’라는 중대범죄 외에 나머지 20여 가지 죄목은 구색 갖추기일 것이다. “설설 끓는 보일러에 처넣고 싶다”는 주민 반응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것에서 김정은이 가진 분노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경제범죄, 마약, 도박 외에 “여러 여성들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다”고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김경희와 장성택의 관계도 오래전에 끝이 났다는 게 정설이고 장성택 때려잡기에 김경희도 가담했다는 설(說)이 있다.

김정일은 당과 군의 간부, 그리고 측근들을 부단히 감시했다. 성혜랑(김정남의 이모)의 아들 이한영은 김정일이 분쇄기에 넣으라는 서류를 몰래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당 간부나 측근들이 이불 속에서 마누라와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이한영 ‘김정일 로열패밀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간부 및 측근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기법은 김정일에게서 김정은에게로 그대로 전수됐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은 나이 어린 최고 권력자로서 장성택에게 의존하면서도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 이중적 심리상태였을 것이다.

장성택은 김정일 시대에도 측근들을 불러 모아 자주 파티를 열다가 김정일로부터 “네가 뭔데 내 흉내를 내 세도를 부리느냐”는 호통을 듣고 강선제강소로 쫓겨 가 2년여 동안 쇳물을 나르며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장성택을 강선제강소에서 구출해 다시 평양으로 복귀시켜 준 것은 성혜림(김정남의 어머니)이었다. 김정일이 성혜림을 버린 후에도 장성택은 성혜림 모자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장성택이 계속 김정남을 돌봐주는 후견인 노릇을 했음은 김정남의 e메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김정남은 일본 도쿄신문 고미 요지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저는 고모님(김경희)과 고모부(장성택)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지금도 그분들의 각별한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김정일이 오랫동안 이복동생 김평일을 견제하고 감시했듯이 김정은도 본능적으로 김정남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장성택과 김정남의 관계도 김정은에겐 주시 대상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세계 어디서나 독재자들은 충성파들에게는 화끈하게 보상하고, 배신자들은 잔혹하게 처벌해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김정은도 이번 사건을 통해 냉혹한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당과 군의 간부들이 보는 데서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이 끌려가는 모습을 연출한 것은 중국의 보시라이 재판에서 배운 듯하다. 이 장면은 연극적 효과를 곁들여 북한의 핵심 파워 엘리트들에게 유일적 영도 외에 한눈을 팔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됐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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