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그런데 그에게 이후 항상 나쁜 일이 생기고 범죄 현장을 자주 맞닥뜨린다. 한 살인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전 경찰 동료가 “대체 왜 이러고 다니는 거야? 범죄를 찾아다니는 거야?”라고 묻자 브로디는 “난 저주받은 것 같아”라고 답한다. 정말 그는 저주받은 운명인 걸까.
우울증 치료차 진료실을 찾은 회사 중역 A 씨가 있다. 그는 10년 전쯤 더 좋은 회사로 옮기자는 선배의 권유로 현 회사에 선배와 함께 채용됐다. 선배가 맡은 특정 팀을 맡아 같이 따라왔는데 불행히도 이 팀은 수주하기로 되어 있던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결국 선배는 또 다른 회사로 떠났고 A 씨는 수년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몇 년 후 그의 위치는 제법 안정됐다. 이후 적극적으로 변모한 A 씨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팀을 꾸리는 일을 자주 도모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처럼 잘되지는 못했다. 결국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진료실을 찾게 되었다.
잭슨 브로디와 A 씨, 그리고 B 씨는 정말 운이 나쁜 것일까. 어쩌면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나는 저주받았어” 식으로 운명 아니면 “다들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거야?”라며 타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만약 프로이트가 이들을 만났다면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을지 모르겠다.
‘반복 강박’이란 힘이 없는 상태, 예를 들면 어렸을 때 겪었던 힘든 일이나 상처받은 일들을 잊지 못하고 지금 힘든 상황을 예전에 겪었던 비슷한 상황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몰아넣는 것을 뜻한다. 왜 이런 강박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우선 당시 불안 상황을 다시 기억하면서 “이제는 견뎌낼 수 있어”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심리, 그때는 극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극복해 보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즉, 앞서 소개한 브로디가 “그때 내 누이는 구하지 못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절망적인 여인은 구해낼 거야”라거나 A 씨가 “이번에야말로 이 프로젝트를 보기 좋게 성공시켜 남들 앞에 으스대고 주도권을 잡아보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B 씨에게는 “내가 좀 까다롭게 굴어도 이번에 만난 상사는 무한정 나를 받아 주고 내 편이 되어줄 거야”라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같은 패턴의 일이 내게 반복되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은 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팔자’를 고칠 수 있고, 인생 괴로움의 총량도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뇌는 성인기에도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 즉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이 있다. 아무리 꼭꼭 뇌에 저장된 자동화된 기억, 패턴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해석하고 교정하고 조절하는 전두엽이 에너지를 들여 활동한다면 새로운 뇌신경 회로, 즉 새로운 마음,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