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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허진석]만델라, 럭비, 용서와 화해

입력 | 2013-12-12 03:00:00


허진석 국제부 차장

여느 스포츠와 달리 럭비 경기를 마치고 난 뒤에는 눈물을 흘리는 선수가 많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한쪽 팔로는 눈물을 훔치며 그라운드를 걸어 나오는 장면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2006년 서울 구로구 온수역 인근에 있는 서울럭비구장에서 본 장면이다. 아마추어팀 간의 대결이었지만, 전력을 다하는 격렬한 운동의 특성 때문에 패배한 팀 선수들은 눈물을 쏟곤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오래전 럭비 경기가 떠오른 것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때문이었다. 그의 장례 기간 중에 남아공 럭비 세븐스 시리즈에서 남아공 대표팀이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만델라는 럭비와 인연이 깊다. 백인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던 럭비를 흑인과 백인이 화합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었다. 1995년 남아공에서 럭비월드컵이 열렸고, 당시 대통령이던 만델라는 대부분이 백인인 남아공 대표팀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격려했다. 결승전 때는 백인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럭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타나 응원했다. 이후 축구 경기장만 찾던 흑인들이 럭비 경기장을 찾기 시작하는 등 흑백 간에는 용서와 화해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럭비가 격렬한 운동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럭비에는 만델라가 추구했던 용서와 화해, 화합의 정신이 곳곳에 스며 있다.

럭비에서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용어가 ‘노 사이드(No Side)’다. ‘더이상 편은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로 격렬한 싸움의 시간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또 럭비의 종주국인 영국의 정통 럭비구장에는 샤워룸이 1곳만 마련돼 있다. 태클 등 격렬한 몸놀림 때문에 경기 중에 쌓인 감정을 양 팀 선수들이 함께 샤워를 하면서 해소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럭비 경기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샤워를 마친 양 팀 선수들은 정장을 갖춰 입고 같이 정찬을 함께 하는 것으로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

미식축구와 럭비는 다르다. 미식축구는 공을 앞으로 던져 패스한 거리도 인정하는 것과 달리 럭비는 우직스럽게도 선수들이 공을 들고 직접 뛴 거리만 인정한다.

여느 스포츠가 그렇지만 럭비는 특히 팀원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럭비는 ‘올 포 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전체는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해)’의 스포츠로 불린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더라도 경기가 끝난 후에는 함께 샤워와 식사를 하며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럭비. 만델라는 인종분리정책으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남아공에 럭비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여겼는지 모른다.

서울럭비구장은 럭비 전용 구장이다. 축구 전용 구장보다 17년이나 이른 1973년에 지어졌다. 만델라 덕분에 럭비 경기를 보면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더욱 또렷이 떠오를 것 같다. 굿바이 ‘마디바’.

허진석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