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수(1941∼ )
신대방 전철역 아래 도림천 고수부지에는 매주 월요일 새벽이면 뱀이 기어가듯 인간 띠가 늘어선다 꼬부라진 지팡이들이 급식 순번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더러는 노숙을 해가면서 새벽안개로 아침을 때우고 하품을 입에 문 채 시멘트 바닥을 긁고 있다 오늘은 선착순 오백 명까지다 순번표를 받지 못한 빈손들은 돌계단에 지팡이를 내려놓고 널브러져 있다 이글거리는 햇살만 한입 가득 물고 먼 하늘만 쳐다본다 순번표 속에는 단팥빵 세 개, 이백 밀리리터 두유 한 팩, 현금 천 원이 들어 있다 어떤 이는 빵 한 봉지와 두유를 그 자리에서 천 원을 받고 되팔기도 한다 그 돈으로 라면을 사들고 휘적휘적 허기진 쪽방으로 지팡이에 끌려간다
개천 둔치에 500명이 넘는 노인이 급식 순번표를 받으러 늘어선 새벽이라니, 슬픈 풍경이다. 다들 어디서 오신 걸까. 노숙인이거나 쪽방에 사는 극빈 노인이기 쉽다. 다 늙어서 노동력도 없고 보살펴 줄 가족도 없으면 급식을 받으러 가야지 어떻게 하겠나. 이런 시를 읽으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나이 들어 극도로 가난한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 새삼 암울하다.
극단적 가난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의 부가 상위 4%에 몰려 있다는데, 그들이 좀 풀면 나아질까. 가난은 그나마 나라만이 구제할 수 있다. 정부에서 관심 갖고 복지정책을 견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 있는 사람들이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극빈자 당사자들은 하루하루 연명하느라 생각할 힘도 없다. 온정에 ‘허기진 쪽방’…….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