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성택 처형 / 남북-북중관계 어떻게]
긴급 보고 장성택 처형 사실이 알려진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 참석하기 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왼쪽)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가운데)이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약해지는 조짐이어서 ‘핵 통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깜깜이’ 남북관계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국지적 도발을 통한 긴장 조성이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을 단행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도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장성택 처형 다음 날인 13일 최근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방한을 언급하며 “괴뢰패당이 구걸외교로 사면초가의 궁지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같은 도발) 예측이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핵개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밝힌 ‘핵과 경제 병진노선’의 양대 축 중 하나다. 2인자를 숙청하고 ‘위대한 영도자’로 올라선 혈기 넘치는 김정은이 자신의 핵심 정책 방향을 뒤집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장성택 숙청 전후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되어 가는 조짐이 보인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중국이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숙청이 외교와 상관없는 북한의 내정(內政)이긴 하지만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중국의 조용한 태도는 이례적”이라며 “김정은 정권 들어 중국의 대북 파워가 줄어드는 추세가 이번에도 일부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이른 시간에 안보실에 출근했다가 귀가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 모처에서 머무는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차분한 가운데 만전을 기해 나갈 것”이라며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정부의 차분하고 면밀한 대응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와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잇달아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지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1인자의 신변 변화가 없는 한 대외 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며 “더구나 남북관계는 이미 경직될 대로 경직된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추진하던 각종 특구와 개발구 프로젝트도 표류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장성택에게 씌운 또 다른 죄목 중 하나는 “나선경제무역지대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투자하고 있는 나선특구의 개발과 관련해 ‘매국행위’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중국을 자극할 여지도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대북소식통은 “내각과 당, 군 등 여러 부분에 지장이 발생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며 “(외자 유치를 맡은) 국가경제개발위원회도 조금 기다렸다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베이징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이 중국에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의 성격도 있는 듯하다”며 “중국은 상당히 난처해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성택의 처형과 상관없이 그런 부분이 판결에 거론됐다는 것만으로 밑의 실무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인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선특구와 광물수출 사업은 물론이고 수자원 수출 같은 사업의 담당자들은 다 날아갈 수밖에 없고 이후에도 새로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나선특구는 중국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부분이 많고 중국 자본이 이미 꽤 투자돼 있다”며 “북-중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