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맑음. 우주인.#87 Radiohead'Subterranean Homesick Alien' (1997년)
라디오헤드의 앨범 ‘오케이 컴퓨터’에는 안드로이드와 외계인 얘기로 가득하다. 동아일보DB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형은 어느 날 장발의 비밀을 알려줬다. ‘그러게, 왜 레코드판에 있는 멋진 형들은 다 긴 머리를 휘날릴까. 같은 미용실에 다니나?’ 형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로커들은 우주인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남녀 성별 구분이 없거든. 그래, 로커들은 우주인을 지향해서 머리를 기르는 거야.” 어렸던 난 이 말을 살짝 믿었다.
13일 밤, 서울 역삼동에서 ‘우주인을 위한 배경음악 60’이라는 공연을 봤다. 괴상했다. 입장 전에 관객에게 머리에 다는 전등을 나눠줬다. 동굴 탐사할 때 쓰는 거 말이다. 입장하자 깜깜했다.
둘째 무대는 실험음악가 권병준 몫이었다. 그가 객석을 향해 놓인 화장대에 앉아 얼굴에 분칠을 하며 이따금 마이크에 ‘후욱!’ ‘슈윅!’ 하는 숨을 불어넣자 그 소리가 즉석에서 외계인 목소리처럼 변형돼 기묘하게 장내를 남실댔다. 마침내 분으로 완전히 덮인 그의 얼굴에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이 투사되자 그는 반사체를 안면에 단 외계인 같았다. 변형된 숨소리는 겹치고 반복되며 리듬을 만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1990년대에 선구적인 소리 풍경을 만들어냈던 밴드 옐로우키친의 공연이었다. 몽환적이었지만 그나마 이게 가장 지구다웠다. 난해하고 황당하며 퍽 재미있지 않았지만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내가 하늘 위에 예쁜 수수께끼의 심연을 이고 산다는 사실.
‘친구들에게 전부 말할 거지만/믿지 않겠지/내가 드디어 완전히 돌았다고 하면서/난 그들에게 별이랑 삶의 의미를 보여줄 거야/그들은 날 격리하겠지만/난 괜찮을 거야.’ (라디오헤드 ‘서브터레이니언 홈식 에일리언’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