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내 친구]
소비 주도층은 ‘어른아이 40대’? ‘2030 우먼파워’? (동아일보 2013년 12월 5일 A24면)
Q: 최근 복고 열풍이 다시 불고 있습니다. 1990년대 가수의 등장으로 큰 호응을 얻은 ‘나는 가수다’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소비, 문화, 음반 시장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거셉니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990년대 대학가 문화를 맛깔나게 묘사하며 이른바 ‘복고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tvN 제공
대중문화의 ‘추억 소환’은 90년대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30∼40대들이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이 왕성한 세대가 된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위기 이후 지속되는 경제 불황도 자연스레 ‘좋았던 그 시절’을 불러오는 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즐겁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속에서 현재의 어려운 현실을 위안받는다고 합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회고 절정’이라 하는데, 나이가 든 사람에게 평생을 회고하게 하면 대개 10∼30세, 즉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의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는 겁니다. 30∼40대들이 90년대를 회고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거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이라는 ‘명(明)’과 외환위기와 대량 실직사태, 삼품백화점 붕괴와 같은 ‘암(暗)’이 공존하던 90년대도 벌써 시간이 흘러 추억의 대상이 된 거겠지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은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해 보일수록 모든 것이 조금 더 단순했고 순진했던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편리해졌는지는 몰라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허덕이다 보니 현재는 늘 ‘팍팍하기’ 마련입니다. 삶의 소소한 추억과 재미에 기대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이 최근의 ‘복고 열풍’에 작용했을 겁니다.
향수를 자극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법을 ‘레트로(복고) 마케팅’ 또는 향수 마케팅이라 합니다. 사실 이러한 마케팅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기법입니다. 과거의 스타일이나 명성에 최신이라는 새로움을 덧붙여 제품을 새로 출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동차 메이커들이 잘 쓰는 기법인데요. 딱정벌레 모양으로 유명한 ‘뉴비틀’은 예전 ‘비틀’의 외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현대화해 크게 히트했습니다.
레트로 마케팅은 일시적인 유행보다는 추억과 향수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근간을 두기 때문에 설득력과 파급효과가 큽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브랜드 출시에 따른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고 이미 충성도 높은 소비계층이 있으니 안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선호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레트로 마케팅을 경영학적인 면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영국 얼스터대의 스티브 브라운 교수는 고객을 대하는 관점을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파했습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는 상당 부분 합리적이지도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90년대를 풍미한 워크맨도 고객 설문에서는 거부당했던 상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 고객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을 즐기며 애태우는 ‘고통’을 원하기도 합니다. 마치 젊은 날 어수룩하고 철없던 시절과 같이 상품이 ‘튕기면 튕길수록’ 더 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 순수함, 젊은 날의 열정
이성훈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섣불리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응답하라 1994’가 큰 호응을 얻는 것도 대학생활이야말로 우리 인생 중 가면을 구태여 쓰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청춘은 어떠하셨는지요.
이성훈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