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점 親중국 2인자 ‘종파사건’ 몰아 숙청 다른점 張사형 신속 공개… 갑산파 두달 쉬쉬
“숙청으로 중국과 좋은 관계에 있던 인사들이 사라지면서 북한의 각종 매체에서 중국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북-중 관계에 해로운 역할을 한 자들의 목소리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는 인명과 자원을 희생하면서 북한을 위해 6·25전쟁에 뛰어든 중국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때 김일성의 오른팔로 불렸던 박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1967년 3월 이른바 ‘갑산파 사건’으로 숙청되고 3개월이 지난 6월 27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루마니아 외교관을 만나 이같이 토로했다.
동아일보가 14일(현지 시간)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단독 입수한 1967년 6월 28일자 루마니아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 중국 외교관은 “항일무장혁명과 북한 건국의 모든 영예가 김일성에게 돌아가는 것을 박금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박금철을 두둔하는 발언까지 했다. 박금철은 북한 지역에서 혹독한 항일운동 시기를 이겨냈지만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에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생활했다는 것이다.
함께 입수된 8건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이 장성택 숙청 및 처형을 외부에 신속하게 알린 것과 달리 1967년에는 평양주재 우방국 외교관들에게도 한동안 관련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박금철 등은 그해 4월부터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지만 외교관들은 6월까지도 숙청 사실을 확인받지 못했다.
6월 13일자 루마니아 외교문서는 “헝가리 외교관들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북한 사람들은 이들이 왜 숙청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피한 채 당의 노선에서 일탈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김일성 지도자 동지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만 한다”고 보고했다.
8월 18일자 동독 외교문서는 숙청 이후 강화된 김일성 1인 우상숭배 현상을 보고했다. 문서는 “김일성의 개인숭배가 강화되고 무오류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특히 ‘친애하고 존경하는 4000만 조선인민의 지도자의 현명한 영도 아래’라고 하는 등 김일성 지도력의 근거를 북한과 노동당을 넘어 모든 한국인에서 찾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의 북한이 대대적인 김정은 우상화와 신격화에 나설 것임을 예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프로젝트 책임자(역사학 박사)는 “박금철 등 최고위급에 대한 숙청 이후 전국적으로 모든 조직의 하부 단위까지 대대적으로 숙청했다”고 설명했다. 1968년 중반까지 지방 중견간부 3분의 2 정도가 숙청됐다는 평가도 있다. 장성택의 지위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당시보다 숙청 규모가 커질 수도 있다.
우드로윌슨센터는 한국현대사포털(digitalarchive.wilsoncenter.org/theme/modern-korean-history-portal)에 관련 문서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