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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기호]‘우리 민족끼리’의 함정

입력 | 2013-12-16 03:00:00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북한이 핵실험뿐만 아니라 인터넷 심리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19일 대남 심리전 웹사이트인 ‘우리 민족끼리’ 유튜브에 3차 핵실험의 강행 이유가 미국의 적대행위 때문이라는 영상물을 올렸다. ‘우리 민족끼리’는 기사 및 논평, 동영상 게시는 물론 유튜브·트위터 계정을 보유하고 인터넷TV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 외에도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트위터와 유튜브를 개설했으며 지난달 1일 대표적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에 웹사이트 ‘민족 대단결’을 또 개설하였다.

북한은 이렇게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웹사이트를 잇달아 개설하여 대남 인터넷 심리전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용어의 함정을 모른다는 점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은 더이상 ‘한민족(韓民族)’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북한은 2009∼2012년 헌법과 당규약을 개정·수정하여 ‘한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둔갑시켰고, 북한을 ‘김일성 조선’이라고 명기했다. 작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연설에서 김정은은 “김일성 민족의 백년사는…”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10만 명을 강제 동원하는 아리랑 공연의 마지막 장(章)도 ‘김일성 민족’으로 돼 있다.

북한은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군권(軍權)을 장악한 1991년 말부터 한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했다. 1994년 12월 단군제(祭)를 개최하면서 ‘김일성 민족’을 언급한 데 이어, 1995년 1월 평양방송은 “오늘 우리 민족은 수령(首領)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 민족이고, 현대 우리나라는 수령이 세운 김일성 조선”이라고 주장했으며,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도 ‘김일성 민족’을 외쳤다. 1990년대 말 옛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단절되자 북한은 ‘우리 민족’이라는 구호를 들고 대남 선전 공세를 강화했다.

그 결과 북한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산물인 6·15, 10·4 남북공동선언에 “우리 민족끼리 통일한다”는 문장을 넣고 이를 재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 통일한다”는 문장은 정확히 해석하면 “김일성 민족끼리 통일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사용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는 ‘김일성 민족주의자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끼리’라고 해석해야 정확하다.

북한은 ‘적’과 ‘동포’가 혼재하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독재자 김정은 일당과 이들에게 압제당하는 동포들이 하나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다. 우리가 도와주고 보호해야 할 민족은 김일성 민족이 아니라 강제로 김일성 민족이라고 오도(誤導)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다.

김일성 민족 세력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는 한국인의 민족 정서를 자극해 대북 지원을 많이 얻어내려는 것이고, 둘째는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겨 미국과 한국 보수세력에 반대하는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파놓은 ‘우리 민족끼리’의 함정에서 우리가 시급히 벗어나야 할 이유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