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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기’ 덫에 걸린 공공-의료개혁

입력 | 2013-12-16 03:00:00

“민영화 아니다” 정부 설명에도 철도노조-醫協 “민영화다” 저항
경제법안은 野서 ‘재벌특혜’ 반대… 정부, 여론설득 못하고 속수무책




관 들고 시위하는 의사들 의사들이 ‘관치의료’를 담은 관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주최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 도중 정부가 주도한 의료정책을 매장해야 한다는 뜻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부의 서비스업 규제 개선안과 철도 경쟁력 강화 등 공공부문 개혁안이 노조와 이익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장기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 의료부문 정책들이 정부의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민영화 수순”이라는 반대 측의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재벌 특혜’ ‘부자 특혜’라는 야당의 낙인찍기로 장기간 계류되면서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부처들은 정책을 발표만 하고 실행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 ‘영리’, ‘민영화’ 낙인에 속수무책

대한의사협회 회원 2만 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1만 명)은 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병원 수익사업 허용 등 현 정부 의료정책들에 반대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의 방안은 사실상의 영리(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안”이라며 진료 거부 등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런 의사들의 시각은 정부 설명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13일 투자활성화 대책을 설명하면서 “영리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의료의 공공성은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발표도 병원 부대사업 확대, 약국 법인화 허용 등에 초점을 뒀고 투자개방형 병원의 확대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영리 병원은 사회적 공감대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투자개방형 병원 전면 도입이 보류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익단체들의 저항은 더 확산되는 추세다.

파업 중인 철도노조와 정부의 줄다리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철도 민영화는 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막겠다”(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고 하고 15일에도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명의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가 아니다”는 성명을 냈지만 노조는 정부 설명을 무시한 채 “민영화 수순”이라며 연말 대정부 투쟁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철도공사(코레일)의 비효율 타파 등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당초 목표들은 논의에서 거의 사라졌다.

외국인투자촉진법과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도 반대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정책의 길을 잃은 사례다. 야당이 정부의 경제 법안들을 ‘재벌 특혜 법안’으로 이름 붙여 공격하는 동안 투자나 고용 확대 등 이들의 정책 효과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회에서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괜히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로 반대하는 걸 지켜보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의료·교육 선진화, 공기업 개혁이라는 정부의 중장기 과제들이 매번 ‘민영화의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고 털어놨다.

○ 생산적 토론은 없고 극한 이념 대립만

정부가 무슨 정책을 발표해도 ‘민영화’ ‘상업화’라는 구도로 환원되고 정책 실행이 지연되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 서비스산업, 공공부문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온 현상이다. 생산적인 토론이나 건설적인 비판은 자취를 감추고 의미 있는 진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 公기관 방만 개선도 ‘부채 책임론’에 초점 흐려져 ▼

‘낙인찍기’에 걸린 공공개혁

예컨대 투자개방형 병원의 경우 “경제자유구역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라도 먼저 해보자”는 타협안이 실제 법령으로 제도화되는 데 10년이나 걸렸고, 아직까지도 정치권 등의 반대로 한 곳도 세워지지 못했다. 코레일의 파업사태 역시 ‘민영화냐, 아니냐’의 논란만 무성할 뿐 정부나 노조 모두 회사의 심각한 비효율을 해결할 생산적 대안을 내놓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공기관 부채 문제도 노조가 “정부 사업을 떠안아 생긴 결과”라는 책임론을 앞세우면서 정작 방만경영 개선이라는 정책의 초점이 흐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문제는 고정관념인데 이념으로 치우쳐서 대립구도가 형성됐다. 의료산업이 발전하면 공공성이 없게 되는 것처럼 연결이 딱 돼버린다”고 우려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타협에 인색한 이익단체들의 거센 저항과 집단행동 탓도 있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 설득과 여론 수렴을 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설픈 강수를 둬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코레일 노조에 대한 대량 직위해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파업에 들어가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돼 임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지만 회사 측이 직위해제를 시켜 기본급은 받는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에 회사의 강경책이 오히려 노조원들의 파업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철도나 의료부문은 이전 정권부터 정부가 민영화 기조를 추진해 왔다는 통념이 퍼져 있는데도 무조건 민영화가 아니니 믿어달라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며 “정부가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송충현 기자

동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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