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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재명]이름만 다른 친박과 친노

입력 | 2013-12-17 03:00:00


이재명 논설위원

원희룡 전 의원이 지난해 유럽여행 중 겪은 일이다. 차를 빌려 우크라이나의 좁은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앞에서 서행하는 트랙터를 추월하자 바로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은 잔뜩 겁을 주더니 흰 종이에 ‘200’이라고 썼다. 원 전 의원은 200유로(약 30만 원)를 쥐여주고 단속을 피했다. 30분쯤 더 갔을까, 이번에는 좌회전 길을 지나쳐 후진을 하려는데 또 경찰이 나타났다. 겁을 주며 200유로를 요구하는 방식이 똑같았다. 100유로밖에 없다고 버티자 그것만 받고 보내줬다.

불쾌한 마음에 원 전 의원은 우크라이나 일정을 접고 망명하다시피 루마니아로 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 도로는 경찰의 함정단속으로 유명한 곳. 20유로만 주면 보내준다는 댓글에 또 한번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루마니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차라리 재판을 받겠다며 배짱을 부렸다. 낙담한 경찰은 우체국에 가서 벌금을 내라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체국에선 벌금 수납업무를 하지 않았다. 진짜 경찰이 맞기나 한 건지…. 이름이 다른 두 나라에서 그는 똑같은 씁쓸함을 맛봤다.

정치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국민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친노를 벗어나니 친박이다. 대선이 끝난 지 1년, 내 느낌은 딱 그렇다. 친노의 문제는 교조주의다. 나는 선(善)이고 나를 비판하면 적(敵)이다. 국민이 친노에 등을 돌리자 줄기차게 언론 탓을 하더니 결국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댔다. 그것도 취재 지원 선진화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나는 선, 너는 적’이라는 폐쇄성은 친박도 뒤지지 않는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악담을 하자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마이크 앞에 서서 4000자가 넘는 비판을 쏟아냈다. 평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코멘트는 한 문장만 허락했던 그다. 이 수석이 깃발을 들자 새누리당은 규탄집회를 여는 촌극을 벌였다. 양 의원을 제명하자는 징계안에는 새누리당 의원 155명이 몽땅 서명했다. 새누리당의 이런 일사불란함, 정말 오랜만이다.

나만이 옳다는 독선은 인사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네가 하면 낙하산, 내가 하면 국정철학 공유’라는 현 정부의 창조적 발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을 닮았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던 날, 원조 친박 서청원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김성회 전 의원이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선임됐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선언하며 누가 봐도 낙하산 인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투하하니 ‘공정사회’를 외친 이명박 정부가 오버랩된다.

지난 대선 친박은 친노 문재인 의원을 가장 쉬운 상대로 봤다. ‘느낌 아니까∼’ 공격하기도 쉽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방에 훅 갈 줄 알았던 친노는 또 다른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친박 덕에 싸움의 동력을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보여주듯 보수의 덩치가 점점 커지니 친박은 남는 장사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편 가름으로 선거는 이길지 몰라도 정권은 필패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우월감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의 산물이다. 아마 친박은 친노를 이렇게 꾸짖고 싶을 게다. ‘니가 그카이 내 그카지 니가 안그카믄 내 만다꼬 그카나?’ 호남의 친노는 이렇게 응수할 게다. ‘니가 긍께 나가 글제 니가 안근디 나가 머드러 글것냐?’ 표준어로 옮기면 이렇다. ‘네가 그러니까 내가 그러지 네가 안 그러면 내가 왜 그러겠니?’ 한마디로 압축하면 ‘적대적 공존’이다. 이것이 박 대통령이 꿈꾼 100%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