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체류형 안보시설 탈바꿈
14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군내면 캠프 그리브스에서 헬멧을 쓰고 페인트 총을 든 외국인 유학생들이 모의전투 를 체험하고 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뒤섞인 동료들의 고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파키스탄에서 온 사이드 무하마드 씨(25·한양대 국제대학원)는 드럼통 뒤에 몸을 숨긴 채 대항군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그에게 남은 총알은 20여 발. 30여 명이던 대항군은 10여 명으로 줄었지만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총알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그는 30여 m 앞에 있는 적진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14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내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푸른색, 붉은색의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외국인 학생 60여 명이 모의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눠 상대방의 진지를 먼저 점령하면 이기는 게임. 실제 총알 대신 페인트 볼을 사용했고 1인당 50발 정도 쏠 수 있다. 이날 모의전투는 실제 전투를 연상시킬 정도로 내내 긴장감이 돌았다.
서울, 경기 수원 등지에서 버스로 2∼3시간을 달려온 이들은 대부분 1∼3년 정도 한국에 머물러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캠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장난기 많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캠프에서 지급받은 신형 디지털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어색했는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강당에서 입소 신고를 마치고 점심 식사는 줄을 서서 각자 식판에 배식을 받았다. 미군 막사를 개조해 만든 내무실에 짐을 풀고는 막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들은 15일까지 모의전투와 비무장지대(DMZ) 모양의 초콜릿 만들기, 나라사랑 콘서트·레크리에이션, 조별 장기자랑, 취침·기상 점호를 체험했고 제3땅굴, 도라전망대, 통일촌 등을 둘러보며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
부대 안에는 미군이 쓰던 50년 넘은 생활관과 체육관, 탄약고, 장교 숙소, 수영장 등 미군이 쓰던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비닐하우스 모양의 반원형 함석지붕을 인 ‘퀀셋 막사’도 원형 그대로 잘 보전됐다. 캠프 그리브스는 임진강 북쪽 민통선 너머에 자리한 유일한 미군기지였다. 남방한계선에서는 고작 2km 떨어진 곳. 6·25전쟁 직후인 1953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2004년 미군이 철수한 뒤로 10년 가까이 비어 있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