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 가요계 결산
올해 첫날부터 동아일보가 시리즈로 게재한 신년기획 ‘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은 사실 기자가 지난해 말 “신년기획 아이디어 좀 내라”는 채근에 못 이겨 토해낸 기획이었다. 뭔가 그런 분위기가 있어 나라 안팎을 살폈더니 정말 그런 분위기였고, 달이 갈수록 그런 기류는 세지기만 했다.
해외 작곡가와 안무가들이 우리의 춤과 노래를 함께 만드는, 그런 분위기는 4월부터 벚꽃처럼 흐드러졌다. 10년 만에 컴백한 조용필이 19집 ‘헬로’의 대부분을 유럽 작곡가들의 곡으로 채웠다. “기도하는…”으로 시작하는 ‘비련’을 부르던 그 얇은 고압선 같은 목소리가 춤추기 좋은 첨단 록의 회로에 들어앉자 그만한 전류가 뿜어질 줄 몰랐다. 16일 유니버설뮤직코리아에 따르면 ‘헬로’ 앨범은 지금껏 25만5000장이 팔렸다.
‘가왕’으로 불리는 케이팝 한류의 조상이자 고집스러운 싱어송라이터인 조용필의 ‘전략적 우회’는 신선했다. 그는 “해외와 교류하며 최신 팝 경향을 녹여내는 노하우를 습득했다. 앞으로 이를 활용해볼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 다음 달, 이효리도 3년 만에 컴백하며 북유럽 작곡가들의 손을 빌렸다. 자신의 반려견에 바치는 첫 곡 ‘순심이’의 멜로디를 만든 것도 앞마당이 아니라 노르웨이와 영국에 사는 작곡가들이었다.
2011년 소녀시대, 2012년 싸이 신드롬으로 케이팝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트인 교류의 길이 4차로 도로쯤으로 넓어진 것이다. 케이팝의 시장성이 입증되자 외국의 노래 상인들로 붐볐다.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그룹 측은 “글로벌 음반사를 통한 소통은 작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해 유니버설을 통해서만 62개 곡이 케이팝에 팔렸다”면서 “노르웨이의 디자인뮤직, 스웨덴의 케널 같은 작곡가들의 참여가 점점 큰 국내 가수의 타이틀곡 쪽으로 더 많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 1월, 동아일보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안무가 토니 테스타(25)가 밝힌 새 의뢰인인 남성그룹 엑소는 올해 아이돌 가요계의 지붕을 뚫어 젖혔다. 데뷔하던 지난해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12명은 올해 늑대가 돼 으르렁댔다. ‘늑대와 미녀’의 춤은 테스타와 국내 안무가 황상훈(비트버거 멤버)의 합작품이었고, ‘으르렁’의 몸짓은 미국 안무가 닉 베스의 창작물이었다. 엑소는 올해 단 두 곡으로 단숨에 10대들의 우상이 됐다. 작곡은 두 곡 모두 유럽과 한국 작곡가가 함께했다. 올해 음반을 100만 장 넘게 판 가수는 엑소뿐이다.
○ ‘귓가에 가까워진 숨소리/날 미치게 만드는 너인걸’ (엑소 ‘으르렁’ 중)
표가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콘서트는 아직 하지도 않은(이달 20∼22일, 2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싸이의 단독 공연 ‘달밤에 체조’다. 싸이가 올 4월 발표한 후속곡 ‘젠틀맨’은 지난해 ‘강남스타일’만 한 신드롬은 아니었지만 이달 13일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 6억 건을 넘겼다.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터졌지만 제2의 ‘강남스타일’이 되진 못했다.
정작 가장 주춤한 건 TV 오디션 스타들이었다. 로이킴은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표절 논란으로 커리어 초기에 얼룩이 졌다. 버스커버스커의 2집은 1집만 한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으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률 자체가 한 자릿수대로 폭락했다.
버벌진트, 산이 같은 래퍼들이 어느 해보다 디지털 음원 차트 정상권에 많이 올라왔다. 올해 선주문으로만 30만 장의 앨범을 판 지드래곤은 미국 모델부터 중동국가 공주까지 다양한 여성의 이상형으로 찍힌 것뿐 아니라 빌보드가 최근 발표한 2013 결산 차트에서 ‘월드 앨범 아티스트’ 부문 9위를 기록했다. 이래저래 부럽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상력의 숲인 인디 음악계의 록, 힙합 음악인들은 더 묻힌 한 해였다. 장미여관이나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무한도전’의 조명을 받아야 이름을 알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