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요즘 으뜸 맛은 흑산도 홍어회다. 쫄깃쫄깃 인절미 씹는 맛이 천하일품이다. ‘삭힌 홍어’나 ‘홍어찜’을 어찌 이에 비하랴. 씹을수록 깊고 은근한 향이 난다. 동지 어름부터 홍어는 알을 낳으러 흑산도 부근으로 몰린다. 등짝과 배래기에 ‘꼽(점액질)’이 잔뜩 스며나 끈끈해진다. 살이 차져 한 점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 쩍쩍 달라붙는다. 꼬들꼬들 달곰삼삼하다. 볼퉁이와 어금니 잇몸 사이에 홍어 살점을 조금치 쟁여두고,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을 은근슬쩍 들이부으면, 어찔어찔 그저 온몸이 자지러진다.
홍어는 연잎을 닮았다. 홍어 한 마리가 ‘홍어 한 닢’이다. 방석만 한 게 맛있다. 반질반질 끈적끈적한 코숭이를 첫째로 친다. 홍어코를 소금장에 찍어 한 입 넣으면 ‘쎄에∼’한 맛이 혓바닥에서 코를 타고 올라가,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정수리가 시큰하고 코끝이 찡하다. 갑자기 콧속이 뻥! 뚫려 신천지가 열린다.
겨울 도루묵은 ‘다산성(多産性)’이다. ‘살 절반, 알 절반.’ 알이 한 마리에 무려 1000∼1500개나 들어 있다. 내장은 있는 둥 없는 둥, 머리 쪽에 손톱만큼 붙어 있다. 알이 토옥♪∼톡♬ 터진다. 석류알처럼 오도∼독♬ 리드미컬하게 씹힌다. 이 틈새를 넘나들며 미끄덩거린다. 명주실 같은 끈끈이 가닥이 이를 엉기고 감아 돈다.
산다는 것은 정말 ‘말짱 도루묵’일까. 정의와 진리, 사랑과 우정, 꿈과 희망 같은 것들은 한낱 도루묵에 불과한 것일까. 구운 도루묵 껍질을 죽 찢으면 알이 구슬처럼 차르르 쏟아져 나온다. 살 한 점에 소주 한 잔, 알 한 술에 맥주 한 잔…. 밖에선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미친 듯이 퍼붓는다.
허허 쓸쓸. 사내들은 왜 술만 퍼마시며 저를 썩히는가. 신새벽 쓰린 속. 부산이나 통영 남해안 어디쯤의 물메기탕이 어른어른 밀물져온다. 금세 혓바닥이 달뜬다. 물메기는 날것으로 끓여야 제맛이다. 아차 하면 살이 다 풀어져 버린다.
물메기는 흐늘흐늘 흐물흐물하다. 영락없는 고주망태 술꾼이다. 세우자마자 주르륵 널브러진다. ‘민물메기와 닮았다’고 해서 물메기다. 삼척 동해사람들은 ‘곰치’라고 부른다. 속초, 주문진에서는 ‘물곰’이다. ‘물텀벙’이라고 하는 곳도 많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다시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물텀벙’이다.
그렇다. 겨울바다는 밥상이다. 거제 앞바다 대구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다. 눈 내릴 때는 대구, 이슬비 오는 봄엔 청어다. 숭어도 펄떡펄떡 높이뛰기가 한창이다. 발그레 복숭아빛 감도는 살점이 달큼하다. 굴도 배춧속처럼 꽉 차 오동통하다. 고기잡이집 딸내미 얼굴은 까맣지만, 굴집 딸 얼굴은 뽀얗다던가.
아, 이것은 또 무엇인가. 졸깃졸깃 옴죽옴죽, 찝찔하면서도 비릿하고, 달짝지근하면서도 감칠맛이 혀끝에 뱅뱅 맴도는, 아, 이 그지없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오호라, 바로 벌교 꼬막이로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