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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에세이/송미령]날도 추운데 탁구나 칠까요?

입력 | 2013-12-19 03:00:00


송미령 도예가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다가 남편의 퇴직에 맞추어 서울 근교에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집에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소망 외에도 자연 속에 살다 보면 건강이 더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살아 보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건강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다.

서울에서 살 때에는 외출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애썼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많이 걷게 되어서 일부러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됐다. 시골로 와 보니 대중교통수단이라고는 버스밖에 없는 데다 그나마도 자주 없어서 가까운 거리도 자가용을 이용하게 된다. 시골 길은 인도가 거의 없어 걸어 다니기에 위험하다. 자전거 도로라는 것도 여가 활동 위주로 되어 있어서 생활편의시설과 동떨어진 외곽에 설치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타고 주민센터나 마트를 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조금만 나가면 경치 좋고 걷기 좋은 곳이 많지만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일부러 시간 내서 규칙적으로 걸으러 가기란 쉽지 않다. 자연스레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체중도 늘고 마음도 우울해져서 운동하기가 더 싫어졌다. 그러다 건강검진에서 심한 고지혈증과 당뇨병 초기 진단을 받았다. 평소 건강을 자신해 오던 터여서 큰 충격을 받았다. 고지혈증 약은 당장에 복용하기 시작했으나 당뇨는 아직 초기라고 하니 의사에게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혈당을 낮추어 보겠다고 말했다.

무슨 운동을 할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탁구장은 멀었고, 헬스클럽은 몇 번이나 등록하고도 재미를 못 붙인 터라 고려하지 않았다. 날씨에 상관없이 지속 가능하고 재미있는 운동을 찾다가 동네에서 가까운 배드민턴클럽에 등록하였다. 새벽에 모인다기에 감히 엄두도 못 내었던 곳인데 사정이 급하니까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시작하고 보니 배드민턴이 여간 재미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또 운동시간에 비해 엄청나게 운동량이 많아서 아침마다 티셔츠를 흠뻑 적셨다. 체중도 점점 줄고 하루 종일 활력이 넘쳤다. 혈당도 잡혀서 약이 필요 없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친 탓인지 오래전에 걸렸던 ‘테니스 엘보’가 다시 생기고 말았다. 이를 어쩌나….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탁구였다. 탁구는 공을 받는 압력이 약해 라켓을 들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나이든 사람도 즐기기 좋은 운동이다.

필자가 거실에 놓은 탁구대.

탁구장이 멀어서 갈 수가 없어 궁리 끝에 아예 집 거실에 탁구대를 들여놓기로 했다. 소파와 TV 등 모든 가구를 치우고 탁구대를 설치했다.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칠 수가 있었다. 집 안에 탁구대가 있으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짬나는 대로 가족이나 손님들과 함께 탁구를 치니 시간 활용도 될뿐더러 사이도 좋아졌다. 운동 중에 끊임없이 깔깔대며 대화를 하니 말이다. 게다가 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공격성(?)까지 스매싱으로 맘껏 발산하니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날도 추운데 우리 탁구나 한판 칠까?” 이 말이 그렇게 정다운 말인지 미처 몰랐다.

올 초 캐나다 밴쿠버에 한동안 머물 기회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그들의 풍족한 체육시설과 활발한 체육활동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공공 수영장, 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이 곳곳에 있어서 학생들도 수시로 이용하고 있었다. 골프까지도 인근 골프연습장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보았다. 직장도 여가 활동을 독려하려고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내준다고 하니 사회 전체가 나서서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도시 곳곳에서 뚜렷이 보였다. 생활체육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80대 후반 노인들도 스키를 타고, 할머니들도 골프장을 걸으며 카트를 직접 끌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 번은 시내 가까운 산 정상에서 70, 80대 한국 교포들을 만났다. 그들은 저렴한 스키장 곤돌라를 산 중턱까지 타고 와서는 정상까지 걸으며 거의 매일 등산을 한다고 했다. 오전에 등산 후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동네에서 골프를 친다는 그들의 말에 집 밖에 나가면 할 일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 은퇴자들과 비교가 되어 부러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결혼에 노후자금을 털어 놓고도 손주까지 봐주며 여유 없이 산다. 장년, 노년들이 운동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어려서부터 희생, 절약, 인내만 배웠지 건강하게 즐기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라고는 중계방송 시청으로 만족했던 세대 아닌가.

과거에는 나라가 어려워서 그랬다지만 경제가 나아진 요즈음이라고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거의 정신적 학대를 당하다시피 하고 있고, 어르신들은 아침부터 동네 병원을 점령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교통신호를 가르치듯이 국가적 차원에서 생활체육을 장려하여 즐기는 습관을 들인다면 건강한 정신과 체력을 가진 선진 국민이 되는 데 한발 앞당길 것이다. 사교육이며 음주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을 생활체육 쪽으로 돌린다면 개인이나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도 절약될 것이다.

송미령 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