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FT가 또 사고(?)를 쳤다. 11월 27일자 오피니언 면에 방공식별구역으로 첨예화된 동북아 영토갈등 기사가 실렸다. 작성자는 2002년부터 6년간 도쿄 지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파일링 아시아 담당 에디터. 그는 알베르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교장관과 만나 “집단 자위권 행사를 비롯한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를 우려하고 있다”는 말을 예상했으나 “주변국과 영토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매우 환영한다”는 답이 돌아와 놀랐다며 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도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소제목은 더 가관이다. ‘서울, 마닐라, 자카르타에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지만 이들은 모두 일본의 재무장을 환영한다(Memories of Japanese Invasion are raw in Seoul, Manila and Jakarta, but they would all welcome the country's rearmament)는 문장이 지면 한복판에 굵은 글씨로 박혀 있다.
동북아 역사에 무지한 일반 외국인도 아닌 경력 23년의 중견 언론인이 한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환영한다는 기사를 썼다는 점은 화가 나다 못해 실소(失笑)를 자아낸다. 하지만 화만 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많이 아쉽다. 외신의 부정적 보도가 있을 때마다 감정이 잔뜩 실린 데다 서투르기까지 한 영어로 반박문만 낼 뿐 본질적인 해결책, 즉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수차례 내한해 ‘한국의 최대 문제는 부정적 국가 이미지’라고 지적한 기 소르망 파리정치학교 교수는 “일본은 다국적 홍보회사를 고용하고 세계 곳곳에 일본 연구소와 장학재단을 만들어 국가 이미지를 끌어올렸지만 한국은 이런 노력을 않는다”고 꼬집은 바 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한 일도 아닌데 왜 안 하는 걸까. 궁금하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