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일민문화상 받는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조한혜정 교수가 1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하자센터의 자유 모임 공간인 ‘하자 창의 허브’ 앞에 섰다. 작은 사진들은 이곳에 자주 오는 동네 주민들과 스태프의 얼굴이다. 그는 ‘함께’ 사는 사회를 누누이 강조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경쟁에만 익숙할 뿐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며 부탁도 잘 못합니다. 저는 젊은이들한테 ‘폐를 좀 끼치고 살아라’ ‘곁불을 쬐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인간은 나누지 않으면 살 수 없잖아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강당 객석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65)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자센터를 설립하고 12년간 센터장을 맡아온 그에게 이곳은 이론과 실천을 잇는 장소이자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실험의 공간이다.
제11회 일민문화상을 받는 조한 교수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하자센터 같은 사회적 공유지대 혹은 지혜를 나누는 공간이 많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여러 질문을 했는데 조한 교수의 결론은 늘 하나로 수렴됐다. 그것은 뭔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자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이런 교육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조한 교수의 교육철학이 바뀌었다고 한다. “1990년대엔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말했다면 지금은 ‘너만 잘되려 하지 말고 동료와 함께 가라’며 품성 교육을 강조합니다. 1등 하려다 오히려 좌절해서 자살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경우를 보면서 시대가 변했음을 느꼈죠.”
최근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과 대학생이 많아졌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 세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 체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좌우가 극단적으로 분열돼 대립합니다. 굉장한 위기예요. 어떻게든 중간의 매개 영역을 넓혀 공론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 세대가 잘 자라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조한 교수는 이 과정에서 “그동안 냉소적으로 팔짱만 끼고 있던 30대 ‘덕후’(오타쿠·한 분야에 전문가 이상으로 빠져든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게 하고, 개성을 중시하고 창의적 활동을 시도했던 1990년대 학번들이 활발히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은 체제 안에 안전하게 머물려고만 하고 기가 죽어서 죽은 듯 다닌다. 아이들이 ‘좀비’처럼 되어가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운동의 불모지였던 1983년 국내에 대안여성운동 단체 ‘또 하나의 문화’를 설립하고 1997년부터는 부모 성(姓) 함께 쓰기 운동에 참여하며 30년간 여성운동에 앞장서왔다. 조한 교수는 “지난 30년간 여성이 직장을 갖거나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은 크게 실현됐다”면서도 여성들이 개인적 생존과 출세에 전념한 경향은 아쉬워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하는 조한 교수는 “원래 공부 따로, 현실 따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퇴는 별 의미가 없다”며 “다만 은퇴 후에는 지금보다 천천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조한혜정 교수는…
△1967년 서울 이화여고 졸업
△1971년 연세대 사학과 졸업
△19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문화인류학 박사
△1981∼2008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08년∼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99∼2010년, 2013년∼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 센터장
△2005∼2007년 서울 성미산학교 교장
△2007∼2008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 저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전 3권·1992∼1994년·또하나의문화),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1996년·또하나의문화),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1998년·또하나의문화) 외 다수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