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프로세스 1년]<下>전문가 제언
통일부는 홈페이지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 개념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켜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서 통일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어디에도 ‘원칙’이란 단어는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국민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하면 원칙을 먼저 떠올린다.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내년 집권 2년차의 숙제이자, 업그레이드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2.0’을 위한 핵심과제”라고 말했다.
○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신뢰’를 채워야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 건설 사업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해 스위스 리프트 수입을 막았다”며 “스키장이 실패해 북한이 선군(先軍)시대의 과거로 회귀하면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전체적인 방향은 원칙적인 대북관계로 잡더라도 그 속에서 ‘남북 신뢰’를 채워나가는 실질적 그림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호섭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개성공단 중단 등으로 북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강했기 때문에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처’ 하나만 있어도 대북정책이 지지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3대 대북 및 외교정책’이 톱니바퀴처럼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현종 전 유엔대사는 “한국이 동북아 열강을 상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남북관계 개선”이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물밑 접촉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남북관계 진전 및 남남갈등 해소의 길을 찾자”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정책이란 것은 상대방을 끌고 나가야지, 상대가 변해야 뭘 하겠다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원칙은 지키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2대 걸림돌로 ‘변화 없는 북한’과 ‘남남(南南) 갈등’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및 종북 의원 논란, 국정원 댓글 정국을 거치며 보혁 갈등이 커지자 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999년 미국이 북핵 대응을 위해 ‘페리 프로세스’로 한미일 공조를 이끌어 낸 것처럼 초당적인 조직으로 ‘한국형 페리 프로세스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북한연구학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바람직한 운영방안’ 관련 학술세미나에서는 박 대통령의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패널은 “박 대통령이 강하게 대북정책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 상황에선 외교안보통일 부처의 정책책임자들이 움직일 공간이 너무 좁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이 정책책임자들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 없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정성택 neone@donga.com·손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