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입니다. 기말고사 과제물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인증사진으로 대체해도 됩니다.”
16일 서울 한 명문대의 ‘사이버 강의실’에 이런 내용의 공지가 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전국 대학가로 확산되던 상황에서 교수 한 명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대자보를 붙이고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면 기말고사 과제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19일 본보가 확인한 결과 이 공지는 문화인류학 전공선택 과목(3·4학년 대상)인 ‘현대문화인류학이론’을 맡고 있는 김모 교수(40)가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해당 대학 국학연구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이 평가가 한 학기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데 타당한 방식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한기 성적은 기말 과제뿐 아니라 토론과 여러 차례에 걸친 평가가 합산돼 이뤄진다. 교수의 주체적인 판단으로 대자보 인증샷 제출도 평가방법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학가에 좌우 대립 논란을 불러올 정도로 논쟁거리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작성을 기말고사 과제물로 제시한 교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수업을 듣고 있는 A 씨는 “과제 평가방법이 참신하다고 생각하고, 참여할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교수의 공지문을 게시한 한 학생의 페이스북에는 과제를 낸 김 교수에 대한 칭찬의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B 씨는 “그동안 우리 학과의 다른 강의들에서도 ‘운동권 학생 인터뷰하기’ ‘시위 참가해 소감문 쓰기’ 등의 과제물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다소 진보적인 성향의 교수님이 낸 과제인 경우, 반대의 생각을 쓰기란 어렵다”면서 “대자보는 자신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써야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평가된다고 하면 누가 교수님과 반대되는 생각을 적어 인증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학과의 한 학생은 “특정 이념적 지향성이 분명한 행위를 교수가 학점을 미끼로 사실상 독려한 것”이라며 “만약 보수 성향의 교수가 일베(강경우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글을 올리면 학점을 주겠다고 했다면 진보 쪽에선 비판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