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사저 책임자 잘라야”… MB “꼭 그래야 되겠어?”
2012년 11월 서울 서초동 이광범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두한 김인종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 ‘내곡동 의혹’이 불거지자 사표를 낸 김인종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니까 책임진 것일 뿐이지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대법원은 그의 유죄(배임)를 확정했다. 동아일보DB
홍준표=“그러기야 하겠나. 대통령이 서울시장 할 때도 기부를 했고, 대통령 때도 월급 전부 기부했다. (재산도) 대부분 사회에 기부했다. 그런데 사저 만들면서 김어준 총수 라디오 제목처럼 ‘꼼수’를 썼겠나?”
김어준=“핵심은 아들이 돈 20% 내고 땅의 절반을 세금으로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편법 유산 상속의 신기원이자 세계 신기록이다.”
김어준=“삐딱해진 것을 똑바로 보니까 삐딱하게 보이는 거다.”
2011년 10월 13일 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딴지라디오’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에 출연했다. 홍준표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나꼼수 멤버들과의 방송 대담 녹화 분량은 무려 200분에 달했다. 대담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용지 매입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
홍준표의 대답은 시간이 흐를수록 군색해졌다. 대담을 나누면 나눌수록 사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MB는 미국 국빈 방문(10월 11∼16일) 중이었다. MB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 아침이 생각났다. 대통령이 전화를 했지만 이른 아침이라 받지 못했다. 홍준표가 다시 전화했다.
홍준표=“국내 걱정은 말고 잘 다녀오십시오.”
그랬는데 이틀 전 시사IN과 시사저널이 제기한 내곡동 의혹이 메가톤급 태풍으로 자라 정권의 심장부를 향하고 있었다. 처음엔 경호동 규모만 축소하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사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여당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에 경호동 축소를 요구했고, 청와대도 받아들였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해 봉하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일도 생각나 “미안한 면이 있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관한 한 누구보다 예민한 후각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홍준표였다. 나꼼수에 당하면서 ‘뭔가 있다’는 불길한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경호처가 MB 퇴임 후의 사저와 경호용 건물 신축 용지를 사면서 사저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윤옥 여사 명의가 아니라 외아들 이시형의 이름으로 샀다? 김어준 말처럼 실거래가가 54억 원인데 아들이 낸 돈은 20%(11억2000만 원)이고, 나머지 80%는 청와대가 예산으로 부담했단 말이지…. 그런데 아들이 소유한 지분이 54%로 오히려 더 많고, 게다가 그중에서도 시세가 가장 높은 땅을 아들에게 몰아줬다고?’
15일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법은 내곡동 사저 건립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뿐이었다.
임태희=“(잠깐 생각한 뒤) 전면 재검토까지만 얘기하십시오.”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과 전국 11개 기초단체장 선거가 치러지는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민심이 안 좋았다.
홍준표는 임태희와 통화를 마치자마자 그날 오후 충주시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장에서 “청와대 사저 논란에 대해선 재검토를 해야겠다는 것이 당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틀 뒤인 17일 아침 청와대. 홍준표는 미국 방문을 마치고 전날 귀국한 MB에게 ‘백지화’를 호소했다. 서울시장 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홍준표=“논현동 땅에서 현대(건설) 사장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논현동으로 가십시오.”
MB=“네 말 듣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논현동으로 가는 게 좋겠다.”
홍준표=“그런데 정말 김백준이는 몰랐습니까?”
MB=“몰랐다. 김 비서관하고 김인종 (경호)처장이 이 문제로 아마 싸운 모양이야….”
홍준표=“그럼 김인종이 사표를 받으십시오.”
MB=“꼭 그렇게 해야 되겠어? 내가 어떻게 사표를 받아….”
홍준표=“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그럼 저는 지금 나가서 기자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겠습니다.”
홍준표가 “김백준은 정말 몰랐습니까?”라고 물어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MB 5년 내내 청와대 살림을 맡아온 김백준 총무기획관은 ‘집사’나 마찬가지였다. 김백준이 사저 구입에 관여했다면 그건 MB가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차마 “각하는 정말 몰랐습니까?”라고 묻지 못하고 “김백준은 정말 몰랐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홍준표는 MB의 말을 믿었다. 홍준표는 당시 몇몇 기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내가 MB한테 ‘형님, 우리 끝까지 잘해 봅시다. 형님 물러날 때 저도 같이 나갈 생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MB는 내가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홍준표도 MB가 자기한테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김인종 경호처장의 사표를 받으라는 말에 머뭇거리던 MB의 모습이 아무래도 걸렸다.
MB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접 땅을 둘러보고 김인종의 건의를 받아들여 ‘아들 명의’ 구입을 지시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시형 이름으로 산 것에 대해 (여론이) 안 좋은 건데…. (하지만) 대통령이 일반 국민과 땅 거래를 할 수는 없잖아요? 대통령이 들어가면 땅값이 확 뛰어요. 몇 배로…. 이시형으로 하면 이름을 모르니까, 보안, 그것 때문에 제가 (대통령에게) 건의를 드린 거고. (대통령이) 논현동에 집이 있잖아요. 또 샀다고 하면….”(김인종, 신동아 2011년 12월호 단독 인터뷰)
제주 출신으로 육사 24기인 김인종은 수도방위사령관(중장), 국방부 정책보좌관(중장)을 거쳐 2군 사령관(대장)을 끝으로 2001년 예편한 인물이다. 그는 2006년 1월 설립된 서초국방포럼을 이끌었다. 서울시장을 마치고 대선을 준비하던 MB가 그에게 안보 관련 자문을 했고, 서초국방포럼은 MB의 ‘안보 캠프’ 역할을 했다. MB 정권 출범 때 그가 유력한 국방장관 후보로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의리의 군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군인의 한계였을까?
SBS 보도본부장을 지낸 최금락은 2011년 10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자마자 내곡동 문제를 떠안아야 했다. 취임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안종하 경호처 차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안종하=“시사IN이라는 잡지에서 내곡동 용지 문제를 보도할 모양입니다. 기사를 좀 빼 주실 수 없겠습니까?”
최금락=“(뜬금없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는 어투로) 기사를 들어낼 수는 없고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세요.”
그러나 안종하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사저 및 경호 용지 매입 실무를 맡았던 사람을 보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때 경호 용지 매입 업무를 처리했던 김태환 전 경호처 직원이었다. 김인종 경호처는 김태환을 다시 전문계약직으로 임용해 내곡동 사저 용지 업무를 맡긴 것이었다.
최금락의 기억.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기사를 빼려고 했다가는 더 큰 일이 벌어지겠더라. 지금 생각해 봐도 황당한 사건이었다. 경호처가 너무 작업을 안일하게 했고, 정무적 감각 없이 밀실에서 진행하다 보니 대형 사고가 난 것이다.”
‘내곡동 의혹’은 결국 특별검사의 수사로 매듭짓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행정법원 수석 부장판사를 지낸 이광범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이 김인종의 내곡동 사저 용지 매입 계획을 승인하면서, 사저 용지 명의는 이시형으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므로’(헌법 제84조) 기소할 수 없었다.
특검은 매입 과정에 ‘MB 패밀리의 꼼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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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처럼 ‘삐딱하게’ 보지 않더라도 자식 때문에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얘기다. 하긴, 그런 대통령이 어디 MB뿐이랴.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