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뿔나고 몸엔 오색 털… 길조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중요민속문화재 제65호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이하응(1820∼1898)의 관복을 장식했던 표장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신 분 관직마다 문양이 다른데, 대군은 기린을 수놓은 흉배를 달았다. 문화재청 제공
원래 기린은 목이 긴 짐승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동양에서 기린(麒麟)은 머리에 뿔이 나고 오색 빛깔 털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신령한 네 동물)로 꼽히는데, 태평성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길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린이 기린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1360∼1424) 때 동아프리카를 다녀온 환관 정화(鄭和)가 이 동물을 황제에게 바치며 처음 기린이라 소개했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 기린이 나타났다는 ‘아부’였던 셈. 엄청난 돈을 쓴 항해가 쓸데없진 않았다는 면피용이기도 했다.
신화 속 기린도 성품이 온화하다.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이나 ‘광아(廣雅)’에는 “짐승은 보통 발 있으면 차고 뿔 있으면 부딪치려 하나, 기린만은 어진 성품으로 그렇지 않다”거나 “인을 머금고 의를 품어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다”고 묘사했다.
유교 사상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댄다.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위대한 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짜 기린은 결코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물론 배우도 실제 성격이야 다르겠지만.
(자료: ‘한자의 모험’(비아북)·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