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 여야 간사의 ‘고충’
20일 오후 5시 국회 본청 6층 예산결산특별위원장실 앞. 본회의를 마치고 위원장실로 향하던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 앞으로 의원 보좌관과 정부 부처 관계자 5, 6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잘 부탁드린다”며 연신 허리를 굽히는 이들은 빨간색 표지를 입힌 사업설명서를 한 부씩 들고 있었다. 예결위 여당 간사로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에 참석해 예산안 세부내용을 심사하는 김 의원에게 예산을 올려 달라거나 줄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러 찾아온 것. 5분도 채 되지 않아 김 의원의 손에는 이른바 ‘쪽지예산’이라고 불리는 사업설명서 몇 부와 어느 정부부처 장관이 직접 쓴 편지, 국회의 한 상임위원장이 보낸 편지 등이 건네졌다.
5차례 예결위원, 4차례 예산소위 위원, 2차례 예결위 간사를 역임한 김 의원은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내년 지방선거 때문인지 특히 올해 (예산 민원이) 더욱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를 받고 있고 사업설명서를 건네받은 것도 족히 수백 건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산소위에 이군현 예결위원장을 비롯해 여야 의원 15명이 참석하는 것을 감안하면 오고 가는 쪽지예산이 수천 건이 넘는다는 얘기다.
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일기에서 “정말 괴롭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거절하기 힘든 분들이 이런저런 연고를 내세워 다짜고짜 들이닥치는데 매정하게 대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또 “안타까운 속사정도 있을 것이고 내가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면서도 “전화기를 놓고 다닐 수도 없고 도망가서 일할 수도 없어 정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고 썼다. 김 의원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아예 의원회관으로 가지 않고, 이 위원장은 모르는 전화는 일절 받지 않는다.
예산소위가 시작된 10일부터 김 의원과 최 의원의 하루 수면시간은 4, 5시간으로 줄었다. 매일 오전 7시경 출근해 예산심사 자료와 당 내부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당 지도부 회의와 예산소위에 참석하고, 하루에도 수차례 간사 간 협의를 거치고 나면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최 의원은 심한 감기몸살까지 걸렸다. 그는 “허리 통증이 심해 사람을 만나도 제대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할 수 없다”며 “칼로리가 높은 과자 몇 봉지와 귤 1, 2개로 점심을 넘기는 일이 많고 저녁도 도시락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최 의원은 예산소위를 시작하며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상임위가 예결위에 정식 요청하거나 예결위에서 정책질의를 거치지 않은 예산은 반영하지 않고 △가급적 국회 내에서 예산안을 협의하며 △합의 처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쪽지예산 논란을 차단하는 한편 지금까지 예결위 간사들이 민원을 피하기 위해 외부에 있는 호텔 객실을 잡아서 예산을 처리하던 관행도 깨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더라도 호텔 객실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 의원도 “본회의장에서 기획재정부 차관이나 예산실장, 여야 간사가 모여 마지막 결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최창봉 ceric@donga.com·길진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