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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오프 대학로’ 성북을 아십니까

입력 | 2013-12-24 03:00:00

대학로 상업자본에 밀려 이전… 삼선동 등에 연극인 60% 둥지
브로드웨이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美 오프브로드웨이와 닮은꼴
주민과 공존 모색… 무료공연 펼쳐




5월 서울 성북구 삼선동 성북천 다리 아래에서 연극인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을 하는 모습. 연극인 들이 상업화된 대학로를 떠나기 시작하면서 전국 연극인의 60%가 성북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성북문화재단 제공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주변 성북구 삼선동 성북천 일대. 겉으론 평범한 일반 주택가 같지만 실제론 한국 연극의 숨겨진 메카다. 부동산 가게 지하, 식당 지하 등 곳곳에 극단 연습실이 숨어 있다. 아침이면 연극인들이 한양도성길을 따라 조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성북천 주변 허름한 술집에는 밤마다 연극배우들이 술잔을 기울인다.

‘연극 1번지’ 대학로가 상업화되면서 연극인들이 삼선동, 동선동, 성북동 등 성북 지역으로 이동해 새로운 문화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주류로 변질된 미국 브로드웨이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오프브로드웨이(Off Broadway)’처럼 성북이 새로운 ‘오프 대학로’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로는 1990년대 들어 큰 변화를 겪었다. 순수예술 및 창작이 중심이던 대학로 연극판에 언젠가부터 코미디와 성인연극 등 기획연극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뮤지컬 등 대형 기획사의 거대자본이 합류했다. 2004년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된 이후 상권이 확대되고 극장 대관료와 임차료가 급등했다. 연극 제작비의 50∼60%를 대관료에만 쏟아 부어야 할 상황이 되면서 가난한 연극인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학로에서 가깝고 월세가 싼 성북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극단과 연습실이 대거 옮겨왔고, 소극장도 조금씩 이동하는 중이다. 성북문화재단에 따르면 성북구에만 연극단 110여 개, 무용단 19개, 미술관·갤러리 19곳 등 160개 이상의 문화예술단체가 있다. 성북에 둥지를 튼 연극인만 1000명을 넘어 전국에서 활동하는 연극인의 60%가량이 모여 있다.

연극인들의 고민은 성북 지역에 다시 자본이 침투하고 임차료가 오르면 또다시 변두리로 쫓겨날 수 있다는 것. 대학로는 물론이고 홍대와 인사동, 삼청동 등에서 예술인들이 밀려난 경험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치구, 지역 주민과 함께 힘을 합쳐 전략적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성북의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성북문화재단을 만들고, 올해 10월에는 성북연극협회를 결성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극단과 연습실에 간판을 달아 ‘커밍아웃’을 할 계획이다. 연습실 공간을 개방해 주민과 관광객이 연극 연습을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연습실 투어’도 구상하고 있다.

연극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극장을 매입해 운영하고 술집, 커피숍 등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하고 무료공연을 펼치는 등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도 한다. 10월에는 극단 연습실에서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를 열었고, 내년 3월에는 32개 팀이 성북천 분수마루에서 주민 대상으로 무료공연을 열 계획이다.

성북구도 지난달 성북동 일대 147만 m²를 역사문화지구로 고시하면서 힘을 보탰다. 한양 도성에 인접한 역사성과 경관 특성을 보호·유지하기 위해 조례로 대규모 소매점, 음식점 등을 제한하고, 문화예술기관이 확대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공재민 서울연극협회 사무국장은 “자본에 물든 대학로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며 “성북천에 극장이 더 생기는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 새로운 문화·예술·지역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로에만 치중된 연극 관련 정부 지원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연극인들은 주장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1월 민간 건물을 임차해 연극 연습실을 지원할 계획인데, 입지를 결정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대학로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준희 성북문화재단 기획실장은 “비싼 대학로만 고집하면 나중에 예산 부족으로 연습실이 사라질 수도 있어 서울연극협회가 성북구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며 “‘연극=대학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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