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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선 공약 조정, 주저할 일 아니다

입력 | 2013-12-24 03:00:00


대통령선거 공약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과 16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실과 괴리가 있는 공약은 수정하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은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라는 취지로 주문했다고 한다. 실제 수요가 미미한 ‘목돈 안 드는 전세대출Ⅰ’ 공약을 다른 상품과 통합해 사실상 폐기한 것도 그 일환이다.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한 것도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유연성을 중시한 결과라고 한다.

대선 공약은 국민과 한 약속이니만큼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다. 애당초 공약을 만들 때부터 신중을 기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선 공약이라고 모든 것을 무리하게 지키려 들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국가의 재정 형편이나 현실 적합성,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의 발생 등으로 수정이나 폐기가 불가피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약속 이행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지원,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18개월로 군 복무기간 단축, 임금피크제와 연계한 60세 정년 법제화 등 일부 주요 공약들의 내용을 하향 조정하거나 시행 시기를 뒤로 미루었다. 앞으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들의 수정과 폐기를 더 과감하게 해나가다 보면 ‘약속 위반’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 여건상 어쩔 수가 없다면 비판을 받더라도 조정과 수정에 나서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다. 꼭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 공약을 골라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조정이 불가피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하고 충분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내년 예산안(약 357조7000억 원)은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 데 따르는 부담과 경기 부진으로 인해 25조9000억 원 규모의 적자로 편성됐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임기 5년 동안 134조8000억 원을 마련해 104개 과제를 이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퓰리즘이 극심했던 지난해 총선과 대선 때의 공약들 가운데 추린 것이 이 정도다. 올해 국가 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 원대를 넘어선 마당에 공약 이행을 위해 빚을 더 키우는 것은 국가재정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복지를 늘리는 방안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경제를 살려 국가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조정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