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완 사회부 차장
아직까지도 사연을 모르는 이웃 주민들이 태연하게 물어 온다. “올해 3월 어린이집 통학차량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어요”라는 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멀리 친척 집에 갔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가 한 달 같고, 한 달이 1년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생업에만 열중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날의 슬픔과 황망함은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세 살배기 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더욱 아른거린다. 9개월이나 지났지만 어디선가 ‘아빠∼’ 하고 나타날 것 같다. 그동안 참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사고를 낸 통학차량 운전사나 어린이집 원장은 두 발 뻗고 잘 지내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올해 3월 세림이를 잃은 아버지 김영철 씨(41)에게는 참 가혹한 크리스마스다.
지난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학차량의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엔 세림이법이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김영철 씨와 민경희 씨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개정안은 마련되지 못했고, 우리 자녀들은 예전처럼 반칙운전이 난무하는 정글 같은 도로에 서게 됐을 것이다. 김 씨는 개정안의 별칭에 딸의 실명을 써도 된다고 고심 끝에 허락했고, 민 씨는 온·오프라인에서 입법청원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근 김 씨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래 끌어왔던 법이 드디어 통과됐다니 딸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 같다”면서도 “사고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조항이 강화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민 씨는 “뿌듯할 법도 한데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며 “어린이가 희생돼야만 법이 바뀌는 게 특히 안타깝다”고 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떨렸다.
최근 세림이법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지인은 “학생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안전기준을 선진국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보다 학생의 인권을 위해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세림이 부모와 민경희 씨에게 큰 빚을 졌다.
―부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으시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