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공권력 투입 후폭풍]파국 치닫는 ‘파업 열차’… 철도 개혁 갈등 이렇게 해결을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 23일 오전 서울 구로구 지하철 1, 2호선이 연결되는 신도림역에서 지하철로 출근하는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승강장 전광판에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으로 열차운행 지연 등 고객 불편이 예상됩니다’란 안내문이 떠있다. 전국철도노조 파업 보름을 맞은 이날 수도권 지하철의 운행률이 85.7%로 떨어져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 ‘공기업 개혁’ 칼빼든 정부, 낙하산 인사 악순환부터 개혁하라
철도노조 파업은 서울 수서역을 출발해 경부선과 호남선을 오가는 고속철도(KTX) 자회사인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를 세우는 계획이 계기가 됐다. 정부는 “수서발 KTX는 민영화의 신호탄이 아니라 자회사를 통한 경쟁 촉진으로 코레일의 방만한 경영을 개혁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부채가 566조 원에 이르는 상황이 사실상의 위기임을 시인하고 코레일 노조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와만 대화해서도 안 된다. 국민과의 소통도 필요하다. 현재 많은 국민이 코레일 자회사인 수서발 KTX 지분 중 정부 지분 59%를 민간에 팔 수 없도록 돼 있어 민영화 자체가 불가능한 점을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철도노조를 ‘약자’로 보고 감정적으로 편드는 사람도 있다. 박진 조세재정연구원 공공연구센터 소장은 “코레일 자회사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하고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민영화 반대’ 외치는 노조, 공식테이블서 정책이견 얘기하라
국내 철도산업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1976년부터 적자를 면치 못했다. 현재 철도의 여객 부문 수송 분담률은 15%까지 떨어지고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430%에 이르렀지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6500만 원이나 된다. 민간 기업이라면 퇴출됐어야 할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다수 국민이 파업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데도 노조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여러 개의 철도 회사를 만들어 코레일과 경쟁하는 체제를 추진했지만 노조는 2002년, 2003년, 2009년에 잇따라 파업으로 대응했다. 파업의 공통된 명분은 ‘민영화 반대’였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적자가 많은 회사의 노조라면 정부와 타협점을 찾아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책에 이견이 있거나 불신이 있다면 모두 공식적인 테이블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권은 지금까지 사회 갈등이 생겼을 때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자기 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활용한 적이 많다. 지역갈등, 의약분업, 기업 규제, 노조 파업, 사회기반시설 공사 등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은 정확한 진단과 대안 제시를 통한 사회 갈등 봉합보다는 표를 얻는 데 유리한 쪽으로 각자 여론몰이를 한 것이다.
이번에도 갈등 상황을 이념적 대결 구도로 몰고 간 탓에 합법적인 주장은 무기력해지고 여야가 제시한 갈등 해결 방식은 감정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권력 투입은 박근혜 정부가 1년간 보여 줬던 불통 정치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도 파업 해결을 위한 조정자 역할을 못 하고 있다. 17일과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현안 보고를 받기로 했지만 새누리당이 사실상 거부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는 조정의 기능을 잃은 채 사회의 갈등을 정치권에 그대로 가져와서 정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는 한국 정치의 비극이자 국가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박재명
민동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