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연출 연극 ‘레드’ ★★★★☆
“화가가 조명과 공간을 지나치게 통제하려 든다고? 그건 그림을 보호하려는 노력이야!” ‘레드’는 치열한 통제가 얼마나 풍성한 연극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신시컴퍼니 제공
100분 내내 무대는 오로지 하나의 공간에 머문다.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강신일)의 작업실. 허구의 인물인 조수 켄(강필석 한지상 더블캐스트)이 자연광을 차단한 그곳에 처음 찾아온 날부터 2년 뒤 해고된 날까지 나눈 대화가 대사의 전부다.
로스코는 1970년 67세로 작업실에서 자살했다. 생을 마감하기 12년 전 그는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집요한 디테일을 응집시켜 쌓아올린 미국 뉴욕의 38층 오피스빌딩 시그램타워 내 레스토랑 ‘포 시즌스’의 벽화 의뢰를 받는다. 레스토랑 공간을 디자인한 미스 반데어로에의 모더니즘 계승자 필립 존슨은 로스코에게 “그림으로 공간을 ‘장식’해 달라”고 청했다.
“인생에서 두려운 게 딱 하나 있어.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리고 말거라는 거야.”
두 번째 장. 중국음식을 우물거리며 시작한 그림과 빛의 관계에 대한 대화가 붉은색에 대한 언쟁으로 이어진다. 앙리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1911년)를 처음 만난 날의 충격을 돌이키던 로스코가 우울하게 고백한다. “이젠 그 그림에서도 레드가 안 보여…. 피할 수가 없어. 블랙을.”
인간은 어둠 속에서 잉태돼 세상에 나오는 순간 처음으로 빛을 만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빛에 집중했던 시선을 차츰 어둠 쪽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무대 위 로스코는 남은 열정의 빛을 세상의 어둠에 온전히 빼앗기는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려 애쓴다. 물론 패배가 시간문제일 뿐임은 잘 알고 있다.
마티스, 렘브란트, 모차르트, 니체 등 로스코가 심취했던 대상들이 줄줄이 언급된다. 하지만 예습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 번째 장에서 두 배우는 모차르트의 ‘흥행사’가 흐르는 가운데 커다란 캔버스 가득히 붉은색을 칠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자연히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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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건 작. 2014년 1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3만5000∼5만 원. 02-577-198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