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손끝으로 내밀한 이야기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휘자 정명훈(60)이 생애 처음으로 피아노 솔로 앨범을 내놨다.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인 ECM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둘째 아들 선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24일 연 간담회에서 정명훈은 "피아노를 통해 우리 손녀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했다.
'피아노'라는 이름을 붙인 이번 음반은 그의 삶과 맞닿은 소품으로 채워졌다. 드뷔시의 '달빛'은 손녀 루아를 위한 선물, 슈베르트 즉흥곡 G플랫 장조는 큰 아들 진의 결혼식에서 연주한 곡이다. 쇼팽 녹턴 c#단조는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위해 연주했다.
음악가로 정명훈의 출발점은 피아노였다. 그는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를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지휘자로 경력을 쌓아나갔다. 실내악 무대에서 가끔 피아노를 연주하기는 했지만 홀로 피아노를 앞에 앉은 모습은 그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훌륭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지휘하지 않을 수 없어 그 길로 갔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는 음악적으로는 아직도 제일 친하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지금은 스스로를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케스트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을 온 마음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당초 두 곡만 연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연주를 시작하면 계속 하게 된다"며 10곡을 들려줬다.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무척 즐겁게 리코딩을 했습니다. 이번 작업이 재밌어 다음번에 하나 더 할 지도 모르겠어요. 피아니스트 콘서트 같은 음반으로 쇼팽을 하나 만들까 해요. 피아노 연습 시간을 찾아야겠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