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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케이스 스터디]유유제약, 업계 최초로 빅데이터 분석 도입

입력 | 2013-12-26 03:00:00

SNS 26억건에서 ‘숨은 보물’을 발견하다




유유제약은 지난 20여 년간 자사 일반의약품 중 하나인 ‘베노플러스-겔’을 아이들 대상의 ‘바르는 진통소염제’로 팔아왔다. 제품 광고모델은 타깃 고객층에 걸맞은 못난이 인형(왼쪽 사진)이었다. 하지만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20, 30대 여성 대상의 ‘멍 치료제’로 리포지셔닝에 나섰다. 일러스트 형태의 광고를 새롭게 제작해 패션·뷰티 잡지에 게재하는 등 홍보에 힘쓴 결과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50%나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유유제약 제공

네이버 검색창에 ‘멍 없애는 약’ ‘멍 없애는 연고’ ‘멍 빨리 없애는 법’ 등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일반의약품(OTC)이 하나 있다. 바로 유유제약의 ‘베노플러스-겔’이다. 20년도 더 된 연고 제품이지만 최근까지 이 브랜드를 아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매출액도 10년 넘게 제자리였다. 하지만 지난해 타깃 고객층을 아이들에서 성인 여성으로 바꾸고 ‘바르는 진통 소염제’에서 ‘멍 치료제’로 새롭게 리포지셔닝(repositioning)한 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50%나 늘었다.

베노플러스-겔의 리포지셔닝 전략 뒤에는 빅데이터 분석의 공이 크다. 무려 26억 건에 달하는 소셜네트워크데이터 분석을 통해 멍이 들면 계란으로 문지르거나 쇠고기를 갖다 붙이는 등 민간요법에만 의존하는 소비자들의 행태를 파악했다. 그 결과 멍 치료제라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유유제약의 베노플러스-겔 리포지셔닝 성공 사례에 대해 DBR가 집중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 20여 년간 ‘바르는 진통소염제’로 판매됐던 베노플러스-겔

유유제약은 1988년 베노플러스-겔(당시 제품명 ‘베노플란트-겔’)을 처음 내놓았을 때 여러 효능 중 ‘하지정맥류에 따른 부종 완화’를 주요 기능으로 삼았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 카테고리에 꼭 들어맞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영역이 ‘바르는 진통소염제’였다. 이에 따라 유유제약 영업사원들은 베노플러스-겔을 “멘소래담류의 진통소염제”라고 소개하며 약국에 공급했다. 다만 피부 자극을 유발하는 성분이 경쟁사 제품에 비해 적으니 아이들한테 사용하면 좋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바르는 진통소염제’라는 제품 포지셔닝은 20년 넘게 계속 유지돼 내려왔다.

유승필 현 유유제약 회장의 장남이자 유유제약 3세 경영인인 유원상 상무는 이 같은 제품 포지셔닝에 의문을 품었다. 본격적인 경영 승계를 위해 2008년 회사에 입사한 그는 당시 전문의약품 위주로 구성돼 있는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기 위해 OTC 사업 확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OTC 품목을 하나씩 검토하던 중 베노플러스-겔에 주목하게 된 것. 그는 “부인의 친구가 젊었을 때 베노플러스-겔을 써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과연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기존 전략이 맞는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대한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분석하면 실제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빅데이터 분석 도입

유원상 상무가 처음 빅데이터 분석을 시도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부분의 경영진은 “소프트웨어로 무슨 약을 팔겠다는 소리냐”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떠도는 댓글 따위를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들이었다. 어차피 OTC도 약사들에게 파는 제품인데 일반인의 생각을 왜 알아봐야 하며, 더욱이 그걸 위해 왜 쓸데없이 돈을 써야 하냐며 반발했다.

유원상 상무의 생각은 달랐다. 최소한 OTC는 최종 소비자인 일반 대중의 니즈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특히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들을 수 있는 창구로는 소셜미디어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겉으로 드러난 소비자들의 니즈뿐 아니라 숨어있는 욕구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보고(寶庫)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몇 개월 동안 경영진을 설득한 끝에 유유제약은 빅데이터 분석을 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초의 시도였다.

○ 경쟁자는 쇠고기와 계란…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라

유유제약은 텍스트마이닝(text-mining·구조화되지 않은 대규모 텍스트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지식을 도출해내는 기법) 전문업체인 다음소프트와 공식 계약을 하고 2012년 초부터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26억 건의 소셜네트워크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부기 완화, 타박상, 벌레에 물리거나 멍든 데 등 베노플러스-겔이 가진 여러 효능 중 유독 ‘멍’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에게 특별히 인식되는 약이나 연고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멍을 없애기 위해 계란이나 쇠고기를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에 ‘멍 빨리 없애는 법’을 검색하면 계란이나 쇠고기가 연관 검색어로 떴다.

키워드 조합을 실시해 본 결과 ‘멍-아이’ 키워드 조합보다 ‘멍-여성’ 키워드 조합이 월등히 많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멍에 대한 시장 수요는 아이들보다 여성들이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멍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가리는 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미니스커트나 민소매 옷을 입고 싶어서 멍을 메이크업으로 가리고 다닌다는 식이었다. 유유제약 관계자는 “베노플러스-겔의 포지셔닝을 단순 OTC를 넘어 미용 시장과도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 리포지셔닝 통해 전년 동기 대비 50% 매출 증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유유제약은 2012년 여름부터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우선 타깃 고객층을 기존 어린이에서 성인 여성으로 바꿨다. 이를 위해 광고 포스터부터 새로 제작했다. 과거엔 ‘못난이 인형’을 광고모델로 내세워놓고 ‘아이들 피부에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베노플러스-겔을 발라주세요’라는 문구를 달았다. 반면 일러스트 형태의 새 광고에선 치마를 입은 여성이 멍든 무릎을 보면서 ‘이런 멍 같은 경우엔 베노플러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다. 과거에는 못난이 인형 광고 포스터를 약국에 붙이거나 약업지에 광고를 게재했지만 새로 제작한 광고는 성인 여성들이 많이 보는 패션·뷰티 잡지에 집중적으로 게재했다. 패션지에 광고를 낸 건 72년 유유제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멘소래담 아류식’ 판매 전략에도 변화를 줬다. ‘베노플러스-겔은 멍 빼는 데 특효’라는 점을 적극 내세우며 약사들과 커뮤니케이션했다. 의약품 관련 후기를 쓰는 블로거는 물론이고 화장품이나 미용 관련 제품 리뷰를 많이 하는 파워 블로거들에게도 베노플러스-겔의 존재를 적극 알렸다. 그 결과 불과 1년 만에 전년 동기 대비 베노플러스-겔의 매출액은 50% 늘어났다. 박성준 유유제약 과장은 “최근에는 일반 약국은 물론이고 성형외과나 정형외과에서도 베노플러스-겔에 대한 문의가 올 정도”라며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베노플러스-겔의 성공 덕택에 유유제약은 올해 초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주최한 ‘제1회 빅데이터 활용·분석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유유제약은 앞으로 베노플러스-겔 외에 유판씨, 피지오머 등 다른 OTC 품목에도 텍스트마이닝 기법을 적극 적용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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