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다 말고 남편이 물었다. 누구네 김치냐고 물을 만하다. 내가 ‘무늬만 주부’라고 소문이 나서 각지에서 김장김치가 당도했기 때문이다. 올겨울에도 다섯 군데서 온 김치들로 김치냉장고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나는 누구네 김치인지 알기 위하여 김치통마다 보내준 분의 이름표를 붙여놓는다.
“그런데 그 김치, 저번에는 맛이 없었는데 이번엔 기가 막히지?”
“하마터면 이 맛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듯이 김치도 그렇다. 가장 절정의 맛일 때가 있는데 우연히 그 시점에 꺼낸 것이다. 영원히 맛없는 김치로 낙인찍힐 뻔했다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김치로 바뀐 것은 시간의 마술이다. 내가 잊고 지내는 동안 저 혼자 스스로 맛이 깊어진 것이다. 아마 그동안 내가 들썩거리고 헤집었다면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 김치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참 많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도 당장에 묵은 김치나 장맛처럼 세월에 곰삭은 맛을 낼 수는 없다. 아무리 명의라도 부러진 뼈를 며칠 만에 붙게 할 수 없다. 제 몸에서 스스로 진액이 나와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영특한 천재라도 인생을 살고 나서야 깨닫는 삶의 지혜를 먼저 알 수는 없다.
한겨울에 제각기 다른 김치를 꺼내 먹으며 생각한다. 어떤 것은 고춧가루와 젓갈과 양념을 풍부하게 넣어서 보기만 해도 침이 돌 정도로 먹음직스럽다. 익지 않았어도 싱싱하고 쌈빡하다. 반면 시간이 갈수록 제 속에서 맛이 우러나는 것도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산뜻하지만 순전히 양념 맛이었던 경우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하고 속 깊은 사람이 있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