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기관차’ 코레일]무소불위 노조 키운 노사 이면합의
코레일이 경영진과 노조의 이면합의를 거쳐 단체협약에 포함시킨 내용에 대해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일반 회사보다 승진이 느린 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평가와 무관하게 자동 승진시키도록 하는 건 독소조항”이라며 “2000년대 중반 단체협상 등에 삽입된 이런 내용들이 결국 불법 파업을 부추겼다”라고 말했다.
○ 지역 철도 장악한 노조
철도노조의 지역 장악력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같이 말했다. 노사가 은밀하게 맺은 합의에 따라 자동 승진, 전보 제한 등 인사 제약 요인이 생기다 보니 본부 외의 다른 지역에서 노조의 힘이 더욱 커졌다는 의미다. 실제 코레일 단체협상에 존재하는 ‘차장급 자동 승진’과 ‘본인의 동의 없는 전보 제한’은 다른 공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두 조항이 결합됨에 따라 가만있어도 승진하고, 원하지 않는 지역에 배치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노조원에게 부여된 셈이다.
이에 따라 지역의 경영진보다 지역 노조 지부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직원들은 부임 후 1, 2년 근무하다 떠나는 지역본부장보다 수십 년 함께 근무하는 노조지부장의 눈치를 볼 정도다. 현재는 두 가지 대표적인 불합리 조항만 남았지만 2009년 허준영 전 사장 부임 전까지만 해도 노조가 인사에 공공연히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지역 철도역장은 “예전에는 노조지부장이 지역 인사를 짜서 보내면 지역본부장이 별다른 이의 없이 승인했다”며 “지금도 인사철마다 경영진이 노조 눈치를 보고 명목상 ‘협의’한 뒤 인사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비창 등에서는 근무조도 노조가 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파업이 장기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각 노조지부가 휘하 노조원들을 장악하고 파업에 나선 상황에서 불참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 노조는 8일간 지속됐던 2009년 파업이 끝난 이후 “각 지부는 파업 불참자에 대한 경조사를 일절 거부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코레일 관계자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직장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경우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부친상, 모친상 때 150만 원 지급
코레일의 방만한 경영 실태는 직원들에게 주는 복리후생비에서도 드러난다. 공공행정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로 임용된 경영진이 노조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반 사기업에서 누리기 힘든 복지 혜택을 부여하고, 노조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경영진을 압박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코레일은 부친상이나 모친상을 당한 직원에게 1인당 150만 원을 부의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올해 부모를 여읜 1557명의 직원이 받은 부의금이 총 23억 원에 이른다. 보통 민간 기업에서 직원 부모 사망 때 50만 원 안팎을 지원하는 것에 비하면 과도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다.
코레일 직원들은 업무 이외의 사유로 질병에 걸렸을 때 병이 나을 때까지 통상임금(연장·야간·휴일 등 각종 법정수당을 산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임금)을 받는다. 업무 이외의 질병에 따른 휴직자에 대해 기본급 일부를 일정 기간 주는 민간 기업에 비해 직원들에게 크게 유리한 제도다. 이런 기준에 따라 코레일은 지난해 업무 이외의 질병으로 휴직한 직원 112명에게 총 40억2000만 원을 지급했다. 1인당 3589만 원꼴로 2009년(2496만 원)의 1.4배 수준이다.
정부와 코레일은 내년 노사 협상을 통해 자동 승진 보장과 전보 제한 조치를 없애고 과도한 복리후생을 줄일 예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번 파업 이후 노조와 협상에 나설 경우 노조가 직원에게 유리한 각종 조항의 연장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며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만큼 문제 조항들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홍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