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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사령관이 실탄지원 주선”

입력 | 2013-12-26 03:00:00

‘한빛부대 실탄대여’ 韓日 진실게임… 사실관계 살펴보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4일(현지 시간) “한빛부대가 현지 유엔 평화유지군인 남수단재건지원단(UNMISS)의 유엔군 사령관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며 사령관이 (일본의 실탄 1만 발 긴급 지원을) 주선했다(arrange)”고 말했다. 반 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남수단 추가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회견에서 이같이 답변했다. 일본 정부가 “한빛부대에서 먼저 일본군에 직접 요청했다”고 주장한 것과 다른 얘기여서 주목된다. 한일 정부 간의 엇갈린 주장으로 ‘진실 게임’ 양상을 띠는 이번 사안의 주요 쟁점과 팩트를 정리했다.

① 일본에 직접 요청했나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에서 “UNMISS에 탄약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과 일본 부대에 있는 탄약을 UNMISS가 수송기로 가져다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NHK방송은 “한빛부대장이 전화를 걸어 1만 발의 실탄을 빌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양측 주장 모두 일정 부분 맞지만 진행 과정의 선후가 다르다.

고동준 한빛부대장(대령·육사 45기)은 21일 UNMISS 연락장교를 통해 UNMISS 지휘부에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 자위대나 일본 정부에 직접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UNMISS 예하 파병부대 중 같은 실탄을 사용하는 국가가 일본과 미국이어서 남는 실탄을 한빛부대로 이송했다. 유엔 차원의 물자(실탄) 재분배일 뿐 ‘국가 대 국가’ 차원의 군수 지원 사안은 아니다.

교도통신은 “원래 현지 부대로 직접 요청이 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유엔을 거쳤다”고 보도했지만 한국 국방부는 한국군이 직접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한빛부대장이 직접 육상자위대 부대장에게 전화한 것도 맞는 얘기이긴 하다. 다만 UNMISS의 결정 사항을 사후 협의하기 위해 양국 부대 지휘관이 통화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 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② 실탄 요청할 정도로 심각했나

산케이신문은 25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실탄 제공을 요청할 때 ‘현지 부대원 1명당 15발밖에 총탄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무기수출 3원칙’ 위배 논란 속에서 실탄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긴급성, 안전성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1명당 15발 총탄’ 발언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80여 명으로 구성된 한빛부대는 병사 1인당 140발의 K-2 소총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국방부 당국자는 “공병과 의무대 위주로 편성된 한빛부대는 유엔 규정에 따라 적정 수준의 화기와 탄약으로 무장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비 탄약을 확보한 것일 뿐 긴박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현지 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한빛부대장이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③ 주일 한국대사관도 실탄 요청했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24일 “유엔과 한국으로부터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주일 한국대사관을 말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이 일본 외무성에 먼저 연락한 것은 아니다. 22일 일본 외무성이 한국대사관에 연락해 실탄 지원 문제를 문의해오자 한국대사관은 “한빛부대가 UNMISS를 통해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고 답변한 것이다.

④ 누가 실탄 운송 비공개 요구했나

산케이신문은 24일 “한국 측이 실탄 이송을 비공개로 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이번 사안을 숨기려 했다는 뉘앙스다.

실탄 이송은 남수단 반군의 표적이 되기 쉬워 비공개로 하는 게 낫겠다고 한국 측이 일본에 제안했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 시간으로 23일 오후 2시 실탄을 실은 유엔 헬기가 떴지만 이미 2시간 전에 일본 언론은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실탄지원 작전은 남수단 반군에게 노출된 채 진행된 셈이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이런 협조 사안은 부대 안전 등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일본 언론 보도로 사태가 꼬였다”고 지적했다.

⑤ 실탄은 무상 지원인가, 대여인가

산케이신문은 25일 “일본이 한국에 무상으로 실탄 1만 발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군 당국은 한빛부대 후속 지원을 위해 탄약과 부식 등을 실은 군 수송기가 현지에 도착하면 실탄 1만 발을 UNMISS에 갚을 계획이다. 한국 군 관계자는 “일본 자위대를 포함해 다른 파병부대가 요청하면 UNMISS에서 이 실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 윤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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