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정 연구원 민속학지에 논문
여성의 월경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 동아일보DB
경북 지역에서 주로 전해지는 이 민담들은 얼핏 여성의 월경에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실은 요즘이라면 법적 제재를 가해도 될 만한 불쾌한 속내가 배어 있다. 도깨비가 나타날 정도로 부정하니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거나 너무 불결해 혼령마저 줄행랑친다는 악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월경을 낮춰보는 시각이 정설인 양 퍼져 있었다. 왜 굳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까지 폄하해야 했을까.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지 ‘민속학연구’ 제33호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백민정 위촉연구원이 게재한 논문 ‘월경 경험과 여성의 정체성 인지’에 따르면 이런 풍조는 월경이 남성우월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였다.
초경부터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초경을 겪은 여성들은 초경혈을 “엉덩이가 깨져서 나는 피”로 착각했다. 이들은 병인 줄 알고 끙끙 앓았으며 숨기려 들었다. A 씨는 장작불에 피를 말리려 했고, B 씨는 지혈에 효험 있다는 술을 들이켰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적 없으니 신체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처녀로 성장해도 월경은 크나큰 고민거리였다. 경제적 이유로 1960년대까지는 생리대 서너 개로 버틴 이들이 많았다. 불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보관도 골치였다. 보통 뒷간 쪽 멍석에 숨겼는데 쥐가 흩뜨려놓아 혼쭐이 나곤 했다. 월경대가 타인 눈에 띄면 무조건 관리 소홀로 비난받았다. 누가 알까 봐 씻는 것도 눈치를 봤다.
백 연구원은 “가부장제가 월경을 강박관념처럼 감춰야 하는 족쇄로 만들었다”며 “앞으로 월경도 당당한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신체적 성숙이라는 긍정성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