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옥빈은 “8년 전의 나는 솔직하기만 했지만 지금의 나는 남을 조금은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해진 배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영화 ‘열한시’(감독 김현석)에서 타임머신 트로츠키를 타고 하루 전으로 돌아갔던 김옥빈(26)에게 물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언제냐고. 그는 “19살이다”고 대답했다.
“19살에 연기자가 되려고 서울에 혼자 올라왔었어요. 학원비도 내야 하고, 참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심적으로 부담이 컸죠. ‘과연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은 힘들지만 배우가 될 테니까 걱정 말라’며 격려해주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올해로 데뷔 8년을 맞은 충무로 대표 여배우가 됐다. ‘여고괴담 : 목소리’, ‘다세포 소녀’ 로 충무로의 신선함을 몰고 왔고 ‘박쥐’, ‘시체가 돌아왔다’ 등 주연으로 활약하며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랬던 그가 ‘열한시’에서 적은 분량임에도 빛을 발하는 연기를 펼쳤다. 시간이동 프로젝트 연구원이자 사건 해결 열쇠를 쥐고 있는 영은 역을 맡았다.
극 속 영은은 내일을 다녀온 인물 중 하나. 연구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를 유일하게 알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김옥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멘탈붕괴가 왔어요. 완전 혼란스러웠죠. 준비를 해올수록 연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애매하게 연기를 하라고 하셔서…. 미리 준비를 하진 않았고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배우 김옥빈.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함께 연기한 정재영(우석 역)과 최다니엘(지완 역)과의 호흡도 돋보였다. 시간이동에 집착하는 우석과 영은의 남자친구이자 냉철한 이성주의자 지완의 갈등을 두고 영은은 두 사람의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 극한의 감정연기까지 치닫는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김옥빈은 감탄하기만 했다고.
“정재영 선배가 연기할 때 정말 넋을 놓고 봐요. 상대방 연기도 잘 받아주시고요. 성격도 좋으셔서 장난치고 싶은 선배에요.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그런 선배에요. 최다니엘은 이상하게 남동생 같아요. 챙겨주고 싶은 느낌? 하하.”
죽음을 앞두고 무섭도록 변해가는 사람의 심리를 잘 보여준 ‘열한시’를 찍으며 김옥빈은 ‘사람의 변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을까. 그는 “나 역시 생각해봤다. 그런데 사람보다 무서운 건 변하는 환경 같다”고 답했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CCTV인 것 같아요. CCTV만 안 봤더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끔찍하게 변했을까요? 원래 연구원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바꿔놓은 거죠. 이 세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환경이 사람들의 감정을 부추기는 것 같아요.”
“원래 다작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 ‘시체가 돌아왔다’의 이범수, 류승범 오빠 필모그래피를 보니 정말 많더라고요. 갑자기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에게 필모그래피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요. 기대해주세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