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대치정국/여권의 속고민]
이 같은 존재감 없는 ‘수직적 당청 관계’는 대선 승리 1년을 기념하기 위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박 대통령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및 최경환 원내대표 등 당 최고위원들과 마주 앉았다. 4월 이후 8개월 만에 마련된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오랜 시간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의료산업 및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자회사 설립에 대한 반대 여론에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식사자리였지만 박 대통령의 주문이 당 지도부에는 무겁게 다가왔다고 한다.
최 원내대표의 박 대통령 ‘엄호’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애국심이 있다면 당장 철밥통 사수 주장은 접고 업무로 복귀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당-청 관계의 불만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한 초선 의원은 “동료 의원들끼리는 수평적 구조가 아닌 상명하달식의 당-청 구조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지역 현장에선 ‘여당인 새누리당도 너무 강경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당이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청와대의 강경 일변도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는 얘기다. 청와대 ‘오더’(직접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독설(毒舌)까지 나오는 판이다. 노사 관계를 담당하는 해당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중재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초선 의원들의 비판은 안에서만 부글거리는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통해 79명의 초선 의원이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대부분 정치적 주장이 강한 ‘소신파’라기보다는 정책전문가형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여당이 국회의원으로서 법을 만드는 ‘입법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원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통법부’로 전락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우여 대표의 지도력 부재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지난해 5월 대선을 앞두고 관리형 대표로서 선출된 케이스인데 대표적 온건파로 계파가 없어 자신의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다. 당 비주류인 옛 친이(친이명박)계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당 대표가 존재감 없이 청와대 눈치만 너무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준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역할 부재론도 거론된다. 18대 국회에선 이명박 정부 당시 정무수석들이 당청 및 대야 관계에 나섰는데 이번에는 여야 의원들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당 일각에선 청와대 참모진이 여야 관계의 완충지대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여야 원내지도부의 ‘강 대 강(强 對 强)’ 충돌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