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8>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
○ 팀워크는 밥상머리에서
유 감독의 별명은 ‘만수(萬手)’. 전략이 많다는 뜻. 그렇다고 복잡하지는 않다. 단순명료하게 승부의 맥을 꼭 짚는다. 상대 약점은 철저하게 파고든다. 유 감독은 지방 경기 이동을 위해 몇 시간씩 버스를 탈 때 좀처럼 자는 법이 없다. 골똘히 전술을 구상한다. 버스가 ‘달리는 연구실’인 셈이다.
약속 시간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켜야 한다. 성장 과정이 다르고 개인 성향이 강한 혼혈(한국 엄마와 미국인 아버지) 선수 문태영도 모비스 입단 후 달라졌다. “태영이가 몇 차례 지각을 해 훈련에서 배제시켰다. 미국 전지훈련 가서 또 늦기에 ‘야 이 ××야 짐 싸서 가. 너랑은 끝’이라고 호통을 쳤다. 다음 날 싹싹 빌더라. (선수들이) 거들먹거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유 감독은 옥석을 잘 가린다. 함지훈은 신인 드래프트 10순위 출신. 최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신인 이대성은 11순위로 지명했다. 김효범, 박구영, 박종천 등은 유 감독의 지도 아래 슈터로 거듭났다. 다른 팀에서 버리다시피 한 선수들을 알토란처럼 길러낸 셈이다. 선수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평가가 쏟아지는 이유다. 요행은 아니다. 세밀한 사전 정보와 자신감의 산물이다. “확실한 장점 하나만 키우면 된다. 못하는 걸 굳이 요구할 필요는 없다. 수비는 재능과 상관없다. 반복 훈련은 필수다.” 유재학 농구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영웅을 지향한다. 그래서 농구 기자단이 모비스 선수를 놓고 최우수선수 같은 개인상 투표를 할 때 늘 어렵게 한다.
○ 멀고 험했던 장수(長壽)의 길
유 감독을 처음 취재한 건 그가 대우증권 코치였을 때인 1996년이었다. 17년 전 유치원생이던 유 감독의 장남은 6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를 졸업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은 훌쩍 컸어도 유 감독은 한결같다. 1997년 프로 출범 후 69명의 감독과 수백 명의 코치가 명멸했지만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코트를 지키고 있는 지도자는 그가 유일하다. 최초로 400승을 돌파하기도 한 유 감독은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1998년 3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감독이 됐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는 못했으리라.
위기도 많았다. 몸담던 농구단이 매각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우증권→신세기→SK를 거쳐 전자랜드로 넘어갔다. 신세기 감독이던 2000년 팀이 최하위에 처져 사표를 내려고까지 했다. 2004년 모비스로 옮겨 2006년 정규리그 1위에 올랐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 전패로 패했다. 2007년 열악한 전력에도 통합 우승을 이룬 뒤 비로소 그의 지도력은 꽃을 피웠다. 올해로 모비스에서만 10시즌째 지도하며 3차례 우승을 엮어냈다. “감독의 열정과 적재적소의 선수, 프런트 지원의 3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신뢰와 소통도 중요하다. 우승하다 보면 슬슬 배가 불러지고 절실함이 사라진다.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경복고-연세대-기아자동차에서 줄곧 최고 스타였던 유 감독은 무릎 부상으로 27세 때 일찍이 유니폼을 벗었다. 아쉬운 마감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을까. 은퇴 후 바로 연세대 코치로 일했던 경험은 큰 자산이 됐다. “많은 걸 배웠다. 스타 출신이니 대접받을 줄 알았던 건 큰 착각이었다. 좋은 선수 뽑기 위해 고교 감독 코치들의 가방도 들어주고, 식사 후 먼저 나와 신발도 (신기 편하게) 돌려 놔 줬다. 유망주 스카우트를 위해 전국을 돌다 며칠 밤을 새우며 추위에 떨었다.” 그러면서 스타 의식을 버리고 선수 관리와 코칭에 대한 노하우를 쌓게 됐다.
유 감독은 내년 스페인 월드컵과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을 공산이 크다. 아시아경기에서는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노리고 있기에 감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농구연맹은 벌써부터 유 감독을 최적임자로 지목해 규정까지 바꾸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참 부담스럽다. 아직 뭐라고 확답을 줄 입장은 아니다.” 망설이긴 해도 결국 그는 OK 할 것 같다. 누구보다 한국 농구에 대한 애정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가을 모비스가 출전한 중국 아시아클럽대회에 취재 간 적이 있다. 유 감독은 50도가 넘는 중국 백주를 들이켜며 한국 농구의 현주소와 경쟁국인 중국, 이란 등의 전력을 안주 삼아 열변을 토했다. “어린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큰 문제다. 기본기는 건너뛰고 성적에만 매달린다.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젠가 감독을 관두면 돌아다니며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싶다. 선수 때부터 농구 배우는 재미가 워낙 컸다. 나 역시 그런 즐거움을 주고 싶다.”
PS: 이날 유 감독과의 대화는 근처 냉면집으로 옮겨 5시간 넘게 이어졌다. ‘농구’ 얘기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유재학 감독의 새해도 여전히 바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