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철회/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시동 걸린 공공기관 개혁
전문가들은 파업 초기에 ‘민영화 프레임’에 걸려 고전하던 정부가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강공책으로 전환해 노조와의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으면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이런 문제를 개혁하려는 정부에 극단적 파업으로 맞서는 공기업 노조의 행태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의 주도권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민은 물론, 정치권이나 공공기관 구성원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의 부실은 한국의 국민경제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수준을 넘어 장차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큰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번 코레일 파업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정부로서는 공공 부문에 쌓인 부실을 털어 내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하루빨리 실행에 옮겼어야 할 상황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95개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지난해 기준 493조 원으로 4년 전인 2008년(290조 원)에 비해 200조 원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국가채무(446조 원)를 넘는 규모다. 여기에 지방 공기업의 부채 72조 원까지 합치면 공공부문 부채는 순식간에 1000조 원이 넘어간다.
공공기관은 부채뿐 아니라 씀씀이에서도 중앙정부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관의 연간 예산 총액은 지난해 455조 원으로 같은 해 정부 예산(325조 원)보다 130조 원이 많았다. 이들 부채와 예산의 대부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도로공사, 철도공사 등 10여 개 대형 공공기관이 차지한다.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빚 상환 능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부채 중점 관리 기관 12곳 중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을 제외한 10개 공공기관의 영업이익 합계는 총 4조3000억 원으로 이자비용(7조3000억 원)에도 못 미친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가운데 대한석탄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은 아예 영업적자 상태로 해가 거듭될수록 부실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 ‘박근혜식’ 공공개혁 성공할까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개혁안을 관철한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죌 태세다. 우선 다음 달에 부채 및 방만 경영 중점 관리 대상에 오른 32개 공공기관으로부터 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을 제출받아 심사하고, 3월까지 정보화, 중소기업, 고용·복지, 해외투자 등 4대 분야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을 끝낼 방침이다. 또 내년 9월에는 중간평가를 통해 개선 실적이 미진한 기관장에 해임 조치를 내린다. 정부는 이미 공공부문 개혁을 향후 국정의 핵심 화두로 삼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큰 줄기로 잡아 놨고, 신년 각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역대 정권들이 줄줄이 실패한 공공부문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초 ‘공공기관 선진화’를 정책 과제로 들고 나왔지만 ‘민영화를 통한 개혁’에 대한 여론 잡기에 실패하고 기관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며 정권 말에 급속히 개혁의 동력을 잃은 바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숨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용 세습 등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부는 앞으로 개혁의 추동력을 얻게 됐다”며 “공공기관의 부채와 경영 상태는 각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개혁 방안을 정부와 공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