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이렇듯 판이한 동서양의 차이. 그게 게서 그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휴양리조트의 입지도 그렇다. 서양의 해변 리조트―서양인 손님을 겨냥한 태국 인도네시아의 리조트도 마찬가지로―는 예외 없이 해 지는 서쪽에 자리 잡는다. 반면 한국 등 동양에선 정반대다. 대개 해 뜨는 동쪽에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서양에선 해 질 녘 선다운(해넘이)과 노을이 지상최고의 이벤트로 칭송받아서다. 그래서 해 질 녘이면 해변에 나와 해넘이를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인다. 반면 동양인은 해돋이(해맞이)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수평선이나 산등성 위로 불끈 치솟는 아침 해의 찬란함과 대지를 암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은근한 여명까지 즐긴다. 시작에 의미를 두는 동양에 반해 서양인들은 마무리에 더 관심을 두는 듯하다.
그런데 유독 휴식에서만큼은 동양이 이런 독자성을 상실한 채 서양을 답습한 듯싶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게 서양에선 ‘사이트시잉(Sightseeing)’인데 동양에서도 역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단순한 볼거리 찾기에 그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조선시대―가 관광이란 단어를 조어(造語)할 때 거기 담은 의미는 전혀 다르다. ‘빛나는 업적을 쌓은 이를 찾아가 그걸 살피고 배우는 것’이다. 관(觀)은 ‘꿰뚫을 만큼 세밀하게 들여다봄’이지 피상만 보는 ‘시(視)’가 아니다.
관광이 ‘남는 시간(Leisure)에 즐기는 재창조(Recreation) 활동’임에 동의한다면 옥스퍼드 사전의 단어 풀이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 함의(含意)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서다. 그 풀이를 보면 레저는 ‘일하지 않거나 근무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진 자유시간’(time when one is not working or occupied. free time), 재창조는 ‘그런 자유시간에 즐기기 위해 벌이는 활동’(activity done for enjoyment when one is not working)이다.
이 두 단어엔 공통된 전제가 있다. ‘일’이다. ‘남는 시간’이란 일과 일 사이의 일하지 않는 시간, ‘재창조’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과업 수행을 위해 남는 시간에 즐기는 활동이다. 다시 말해 남는 시간과 재창조가 나의 인간적 삶이나 그걸 위한 휴식 활동이 아니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구태의 관광은 청산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각을 위해 새해 새 아침은 더없이 좋은 시점이다.
일을 위한 도구로서의, 생산지향적 수단으로서의 관광은 이제 버리자. 이젠 스스로 자아를 돌보고 실현하며, 내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인간 본성의 회복 수단으로서의 관광을 지향하자. 더불어 선인의 빛나는 모습을 찾아보는 진정한 관광으로 돌아가자. 요즘 세상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힐링은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대접해 본성을 회복시키는 치유(治癒)’다. 그러니 이젠 관광과 여행도 힐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추구해야 한다. 120년 전 갑오개혁은 평가가 분분하나 이 새로운 자아 회복의 시도만큼은 이 갑오년에 성공하길 기대한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