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이 단어의 유행에 기여한 또 다른 사람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약 30조 원의 재산으로 세계 13위 부호인 그는 2002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 31일까지 12년간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3선 시장으로 일하며 성공한 경영자가 성공한 정치인 및 행정가도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것도 불과 ‘연봉 1달러’만 받으면서.
환경친화적 도시 재개발로 뉴욕의 이미지를 한껏 드높인 일은 블룸버그의 업적이다. 전임자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은 ‘범죄와의 전쟁’을 펼쳐 뉴욕의 범죄율을 대폭 낮췄지만 맨해튼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여전히 뉴욕의 치안은 좋지 않았다. ‘비싸고 더러우며 불친절한 도시’란 뉴욕의 이미지도 여전했다. 여기에 9·11테러까지 겹쳐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기존 입지마저 약화될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의 진정한 업적은 억만장자의 정치 참여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린 일이다. 1992년 한국 대선에 출마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정보기술(IT) 재벌 로스 페로의 낮은 득표율에서 보듯 부자 정치인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2012년 미 대선에서 2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닌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미 대통령 중 재산이 가장 적은 축에 속하는 버락 오바마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 받는 것이 드러나 논란을 낳았다. 게다가 부유층을 옹호하는 발언마저 일삼아 패배를 자초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12년간 뉴욕 시청의 대형 어항 청소, 시 관련 단체 기부 등에 최소 7200억 원의 자기 돈을 썼다. ‘일도 잘하고 기부도 열심인 데다 소탈하기까지 한’ 부자 정치인의 새로운 유형을 만든 것이다.
급속한 세계화와 금융위기의 여파는 0.1%의 사람이 나머지 99.9%의 부를 합친 것만큼 많은 돈과 힘을 지니게 만들었다. 싫든 좋든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이상 0.1%가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에 열심일 때 99.9%에 속하는 대다수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제2, 제3의 블룸버그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