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실망스럽다’는 뜻을 다시 밝혔다. 아베 총리의 우경화 폭주가 중국에 맞서는 형국이지만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제동을 거는 것이다. 중국은 국제 사회의 일본 비판을 지렛대로 전화 외교를 통한 ‘일본 포위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참에 일본의 ‘중국 포위망’을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아베 폭주’라는 변수는 새해 동아시아 외교안보 지형에 복합적인 파장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 일 총리, 29년 만의 남태평양 제도 순방
지난해 12월 31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올해부터 2년간 여러 차례로 나눠 남태평양 섬나라를 방문한다. 현직 일본 총리가 남태평양 제도를 방문하는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가 피지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이후 29년 만이다. 아베 총리는 이들 방문국에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하는 등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9월 팔라우에서 열리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이 회의에 부장관급을 파견해왔다.
이와 별도로 일본은 1997년 ‘태평양·섬 정상회의’를 창설하고 3년마다 이들 국가 정상을 자국에 초청해 ‘선물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군사전략적 가치가 높은 데다 해저자원도 풍부하다. 이들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합치면 중국 육지 면적의 2배인 2000만 km²나 된다.
이에 맞서 중국은 ‘중국-태평양도서국 경제개발협력포럼’을 개최해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과 연계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도 거침이 없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집권 자민당이 이달 소집되는 정기국회에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개헌 움직임을 본격화한다고 지난해 12월 31일 보도했다. 자민당은 특히 전국적으로 국민과의 대화나 집회를 열어 개헌 분위기를 고조시킬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한 뒤 자위대법, 주변사태법 등 자위대 활동을 규정한 개별법부터 우선 개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직후 주일 미대사관과 국무부가 발표한 성명 중 ‘실망스럽다(disappointed)’는 표현을 다시 언급한 뒤 “우리가 선택한 단어를 감안하면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일본은 우리의 소중한 동맹국이요 친구이며 여러 이슈에서 파트너 관계”라며 여운을 남겼다.
중국은 연일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러시아 독일 베트남 등의 외교장관과 연쇄 전화회담을 하고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따른 파장과 대응 방안 등을 협의했다고 신화통신이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며 아베 총리의 행동은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지난해 12월 31일 국제문제에 관한 사설 격인 중성(鐘聲) 칼럼에서 아베 총리를 두고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치파(奇파)’”라고 표현했다. 치파는 ‘정말 이상한 사람’ ‘상식에서 상당히 벗어난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다.
한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 및 일본 문제를 심층 협의했다. 신년 인사를 겸한 이번 통화는 중국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한중 외교장관이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전격 처형,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직접 통화하기는 처음이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 조숭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