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강하면 피해가자”… 싸우지 않고 大勝
영실업이 만드는 변신로봇 ‘또봇’ 시리즈. 또봇은 일본 반다 이사의 ‘파워레인저’를 제치고 국내 남아용 완구 1위 브랜 드가 됐다. 애니메이션에 폭력성을 줄이고 대상 연령대를 4∼5세까지 낮춘 것이 주효했다. 영실업 제공
완구업계에서 12월은 ‘장난감 전쟁(Toy Wars)’의 달로 불린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석 달간 팔리는 완구가 한 해 전체 판매량의 40%에 이를 정도다. 영실업 입장에서는 전통의 로봇 장난감 강자인 일본 반다이사 ‘파워레인저’ 시리즈는 물론이고 이용 연령대가 넓어 유리한 ‘레고’의 아성까지 무너뜨리며 ‘대승’을 거둔 셈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43호에 실린 영실업 또봇 사례 분석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日 반다이와의 협력과 결별
○ 제품 먼저 만들고 애니메이션 제작
이전까지의 모든 취학 전 남아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영화는 일본식 ‘제작위원회’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일본처럼 완구제조업체의 힘이 강한 경우에는 적절히 협의하며 영화도 제작하고 그에 맞게 완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자금을 모으기도 어렵고 완구업체도 영세한 한국에서는 번번이 실패하는 모델이었다. 완구업체, 방송사,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이 모여 콘텐츠 기획을 함께 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입김이 강해져 완구업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한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영화를 제작했다. 당연히 완구 판매에 도움을 주는 로봇의 ‘변신 장면’도 별로 안 나오고, 나온다고 해도 완구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형태로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TV 방송을 보고 완구를 산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방송에서 본 것과 다르게 구현되는 장난감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완구에 흥미를 잃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장난감은 물론이고 방송콘텐츠도 회자되지 않는다. 당연히 시청률이 떨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영실업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치밀한 기획으로 완구를 만들고 나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섭외해 제작에 들어갔다. 이미 만들어진 로봇 캐릭터가 제작사에 의해 캐스팅되는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기아자동차의 협력을 얻어 실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 모델을 토대로 로봇을 만들었고, 이는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시청→외출 시 거리의 자동차를 통한 재각인→완구 구입’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 파워레인저와 경쟁하지 않는 경쟁전략
파워레인저
유재욱 건국대 경영대 교수는 이를 ‘틈새시장 집중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반다이와 다카라토미를 포함한 수입 완구 업체들이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던 국내 완구 시장에서 영실업이 취했던 전략은 ‘전면전’이 아닌 ‘경쟁하지 않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실업은 남아완구시장 후발업체로 제품 소재, 연령대, 시청 시간과 채널 등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요소들에서 차별화한 뒤 틈새였던 자신의 타깃시장을 집중 공략했다”고 덧붙였다. 영실업은 특히 경쟁사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중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틈새시장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점차 타깃 시장에 맞는 애니메이션 스토리와 제품 라인을 만들어갔다.
○ 중소제조업체를 모아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
영실업이 또봇을 기획하고 완구를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봉착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외로 ‘대량 생산’이라는 제조의 기본적인 부분이었다. 영실업은 완구를 기획하고 디자인하지만 제조 공장은 갖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아용 플리스틱 완구 히트작이 나와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경공업 기반이 약해진 상황이다. 영실업은 ‘쉬운 길’인 해외생산에 들어가지 않았다. 품질 관리를 위해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봤다. 완구의 각 제조 단계를 맡을 수 있는 중소업체 네 군데를 선정해 육성하는 전략을 썼다. 영실업이 갖고 있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네 업체가 유기적으로 생산관리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지휘했다. 이 같은 생산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자 영실업을 포함한 5개의 업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생산과정이 마치 한 회사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유재욱 교수는 “국내 중소업체와 함께 또봇을 만들어가면서 ‘외부자원의 효과적인 사용’ 등을 통해 비용우위에 기초한 가격경쟁력을 달성했다”며 “모든 기능을 내부화하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기획과 디자인 그리고 물류·유통’에 집중한 것 역시 영실업 성공의 주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