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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케이스 스터디]남아 완구시장 지존 日‘파워레인저’ 꺾고 1위 오른 국산 ‘또봇’

입력 | 2014-01-02 03:00:00

“상대가 강하면 피해가자”… 싸우지 않고 大勝




영실업이 만드는 변신로봇 ‘또봇’ 시리즈. 또봇은 일본 반다 이사의 ‘파워레인저’를 제치고 국내 남아용 완구 1위 브랜 드가 됐다. 애니메이션에 폭력성을 줄이고 대상 연령대를 4∼5세까지 낮춘 것이 주효했다. 영실업 제공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국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등 모든 유통채널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영실업에서 만든 변신합체 로봇 장난감 ‘또봇’ 때문이었다. 또봇 시리즈 최신 제품을 구하기 위해 대형마트에서는 번호표를 배정받고 ‘1인당 1개 구매 가능’이라는 조건하에 수십 명의 부모가 기다리는 일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 가격이 정가의 3배까지 치솟았음에도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완구업계에서 12월은 ‘장난감 전쟁(Toy Wars)’의 달로 불린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석 달간 팔리는 완구가 한 해 전체 판매량의 40%에 이를 정도다. 영실업 입장에서는 전통의 로봇 장난감 강자인 일본 반다이사 ‘파워레인저’ 시리즈는 물론이고 이용 연령대가 넓어 유리한 ‘레고’의 아성까지 무너뜨리며 ‘대승’을 거둔 셈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43호에 실린 영실업 또봇 사례 분석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日 반다이와의 협력과 결별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들이 열광하는 변신로봇 장난감은 오직 일본 반다이사의 ‘파워레인저’였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실사영화 콘텐츠와 다양한 로봇이 합체하며 ‘거대한 로봇’으로 변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고 장난감으로 이를 구현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인터넷에서 가격이 서너 배 오르는 건 원래 파워레인저 얘기였다. 그러나 2009년부터 본격 출시된 영실업의 또봇은 2012년 대형마트 완구 매출 전체 1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에는 말 그대로 대박을 냈다. 한 대형마트 기준으로 지난해 11월까지 전체 상위 10개 품목 중 7개가 또봇 시리즈였다. 본래 영실업은 완구 로봇시장 최강자인 반다이사 파워레인저의 유통사였다. 반다이사와의 결별이 공식화되기 시작하던 2007년 말부터 영실업은 자체 로봇 브랜드와 제품이 그동안 실패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 제품 먼저 만들고 애니메이션 제작

이전까지의 모든 취학 전 남아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영화는 일본식 ‘제작위원회’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일본처럼 완구제조업체의 힘이 강한 경우에는 적절히 협의하며 영화도 제작하고 그에 맞게 완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자금을 모으기도 어렵고 완구업체도 영세한 한국에서는 번번이 실패하는 모델이었다. 완구업체, 방송사,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이 모여 콘텐츠 기획을 함께 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입김이 강해져 완구업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한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영화를 제작했다. 당연히 완구 판매에 도움을 주는 로봇의 ‘변신 장면’도 별로 안 나오고, 나온다고 해도 완구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형태로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TV 방송을 보고 완구를 산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방송에서 본 것과 다르게 구현되는 장난감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완구에 흥미를 잃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장난감은 물론이고 방송콘텐츠도 회자되지 않는다. 당연히 시청률이 떨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영실업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치밀한 기획으로 완구를 만들고 나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섭외해 제작에 들어갔다. 이미 만들어진 로봇 캐릭터가 제작사에 의해 캐스팅되는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기아자동차의 협력을 얻어 실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 모델을 토대로 로봇을 만들었고, 이는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시청→외출 시 거리의 자동차를 통한 재각인→완구 구입’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 파워레인저와 경쟁하지 않는 경쟁전략

파워레인저

또봇에는 ‘파워레인저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국산 로봇’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지만 영실업은 타깃 연령층을 달리했다. 한찬희 영실업 대표(40)는 “스토리 소재, 주 연령대, 시청 시간, 채널 등 모든 부문에서 파워레인저를 피해 가는 전략을 폈다”고 말했다. 실제 파워레인저의 주 소비층은 6∼7세 이상 어린이들이고 또봇의 주 시청층이자 완구 사용층은 3∼4세 이상 7∼8세 미만 아동이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따라 일부 중복이 발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령대가 겹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한국 부모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폭력성도 줄이고 아이들이 직접 전투에 참가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스토리도 거의 없다.

유재욱 건국대 경영대 교수는 이를 ‘틈새시장 집중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반다이와 다카라토미를 포함한 수입 완구 업체들이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던 국내 완구 시장에서 영실업이 취했던 전략은 ‘전면전’이 아닌 ‘경쟁하지 않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실업은 남아완구시장 후발업체로 제품 소재, 연령대, 시청 시간과 채널 등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요소들에서 차별화한 뒤 틈새였던 자신의 타깃시장을 집중 공략했다”고 덧붙였다. 영실업은 특히 경쟁사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중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틈새시장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점차 타깃 시장에 맞는 애니메이션 스토리와 제품 라인을 만들어갔다.

○ 중소제조업체를 모아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

영실업이 또봇을 기획하고 완구를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봉착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외로 ‘대량 생산’이라는 제조의 기본적인 부분이었다. 영실업은 완구를 기획하고 디자인하지만 제조 공장은 갖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아용 플리스틱 완구 히트작이 나와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경공업 기반이 약해진 상황이다. 영실업은 ‘쉬운 길’인 해외생산에 들어가지 않았다. 품질 관리를 위해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봤다. 완구의 각 제조 단계를 맡을 수 있는 중소업체 네 군데를 선정해 육성하는 전략을 썼다. 영실업이 갖고 있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네 업체가 유기적으로 생산관리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지휘했다. 이 같은 생산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자 영실업을 포함한 5개의 업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생산과정이 마치 한 회사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유재욱 교수는 “국내 중소업체와 함께 또봇을 만들어가면서 ‘외부자원의 효과적인 사용’ 등을 통해 비용우위에 기초한 가격경쟁력을 달성했다”며 “모든 기능을 내부화하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기획과 디자인 그리고 물류·유통’에 집중한 것 역시 영실업 성공의 주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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