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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종수]MB의 전봇대와 박 대통령의 손톱 밑 가시

입력 | 2014-01-02 03:00:00

MB 개혁의 상징 ‘전봇대 제거’… 반짝 시늉하다 임기내내 미해결
박 대통령 “가시 뽑아내겠다” 中企-상공인 고충 해결 선언 1년… 규제 늘고 인허가 부당거부 여전
개혁 어젠다 관리시스템 만들고 대통령이 현장 점검-독려해야 前정권들 실패 전철 안밟아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전봇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상징이었다. 당선인 신분으로 온 나라의 기대가 집중되던 2008년 1월 기업과 국민의 애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상징으로 전봇대를 거론했다.

선박 블록을 만드는 회사들이 입주해 있는 전남 대불산업단지. 10m 높이의 전봇대 때문에 20∼30m 높이의 트레일러가 통과할 때마다 전선을 절단했다고 했다. 그때마다 300여만 원의 비용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지연됐다. MB는 인수위원회에서 이것을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질타하며 해결의지를 천명했다.

그 후 이틀 만에 전봇대가 제거되었다. 비가 오는 날 감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당선인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여당 대표와 총리도 잇달아 현장을 방문했다. 이 지역의 전봇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그날 전봇대는 1개만 제거되었다. 나머지 수십 개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트레일러가 지날 때마다 전선을 끊었다 붙이는 일은 MB가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기업인들이 “이제는 지쳤다”고 체념하며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다가 2013년이 돼서야 다시 민원을 제기하고 7개가 지중화되었다.

대통령의 의지가 정책으로 집행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비용과 기관 간 협조 문제를 간과하고 어젠다를 선정한 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여러 공무원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혁의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했다. 아무리 대통령이 개혁의지를 천명한다 해도 그것을 계속 관리할 시스템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집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초기에 일회성 행사로 움직임이 보일지는 몰라도 개혁 어젠다가 실행되어 성과로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의 제거를 내걸었다. 인수위원회에서 대통령이 그것을 언급한 지 닷새 후면 일 년이 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초점을 맞추고, 범정부적 협조를 통해 고충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의 추가적인 자원이 여기에 투입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규제 완화와 불편 해소 측면에서는 실적이 더디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 건수만 보더라도 2012년 12월 말까지 7531건이었으나 2013년 기준 7609건으로 오히려 78건 늘었다. 부당한 인허가 거부, 부패, 정책의 거래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작은 가시 뽑기에 치중하다 오히려 구조적 부패를 방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약속과 개혁의지가 실행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개혁의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천명하는 개혁의 어젠다는 실종되고 만다.

사회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개혁 시스템을 대통령 직속으로 강력히 꾸려주는 게 모든 성공한 나라의 공통된 전략이었다. 개혁 어젠다의 관리를 일반 부처나 청와대 수석 중 한 명에게 맡기는 건 무리다. 그들은 일상적 업무와 돌발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바쁘다. 대통령의 임기 3년만 지나도 타 부처의 국장을 불러 개혁을 독려하고 추궁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걸 여러 번 보아 왔다.

둘째, 대통령 스스로 현장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현장을 찾아 진척 상황을 확인하고 격려 또는 추궁해야 한다. 박정희 경제정책의 성공 요인을 묻는 필자에게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과장들에게 직접 확인하는 현장주의를 꼽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9년 3개월 동안 비서실장을 하며 사실상 국정운영을 조율했던 사람이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을 하지만, 정부는 ‘계획’만 선언하는 데 익숙하다. 성과는 뒷전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대통령도 퇴임과 함께 숨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게 현 정부부터는 바뀌어야 한다. 정권이 탄생한 원초적 요인보다는 성과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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