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경제 엔低 공포]원엔 환율 1000원 붕괴 파장
환율 급락에 주가도 출렁 2일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대가 붕괴되고 코스피가 40포인트 넘게 급락하면서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엔화 약세’ 쇼크가 갑오년 새해 벽두부터 국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2일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 이하로 떨어지자 재계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은 엔화 약세가 글로벌 시장에 어떤 판도 변화를 가져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국내 전체 수출액이 최대 6%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동차는 엔화 약세로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품목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754만8477대 중 644만9612대를 해외 시장에서 팔았다. 해외 판매 비중이 무려 85.4%에 이른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대부분의 해외시장에서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직접 경쟁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대대적인 할인 공세에 나설 경우 현대·기아차의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지난해 발간한 ‘엔저 장기화와 자동차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국내 업체들의 자동차 수출이 12%(금액 기준)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도 엔화 약세의 영향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올해 현대·기아차의 판매 목표치를 전년보다 4.2% 늘어난 786만 대로 발표했다. 2003년 판매 성장률 3.5%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려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며 “현대·기아차로서는 품질 강화와 브랜드 경쟁력 제고 등 ‘원론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수출경쟁력 악화 우려
그러나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면서 올해는 지난해 같은 ‘수출 호황’이 재현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엔화 약세 효과로 지난해부터 이미 대(對)일본 수출액이 감소하고 있다”며 “전체 수출액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6∼7%에 불과하지만 엔화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등 부품 업체들의 우려도 크다.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일본 부품 기업들이 가격경쟁력까지 갖추면 국내 기업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스마트폰, TV, PC 등에 들어가는 일부 부품은 교체 주기도 짧아 엔화 약세 효과가 조기에 현실화할 수 있다.
반면 일부 기업은 완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악화되는 반면에 일본산 부품이나 소재를 싸게 들여와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내놓고 있다.
○ 중소기업들도 ‘울상’
양갑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정책실장은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최근 10∼15% 떨어졌다”며 “백색가전 외에도 스탠드, 전기밥솥, 글라스락 등 주요 수출품목들이 지금은 일본 제품과 가격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콘텐츠 산업도 엔화 약세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일본 내 한류 붐에 따라 진출을 꾀하던 만화 드라마 음반 등 문화콘텐츠 관련 사업은 엔화 약세로 인해 수출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정지영·정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