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그런데 대선 1주년 즈음 이들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연일 쓴소리를 쏟아낸다. 최근 철도파업과 관련해서도 이 전 비대위원은 청와대와 정부의 소통이 “올드하다”고 비판한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키즈의 지적에 대해 “가슴 서늘한 충격”이라며 자성론에 불을 지폈다. 2013년 12월 25일 ‘주간동아’ 인터뷰룸에서 이 전 비대위원(사진)과 마주앉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쟁에 묻힌 정책 이슈 여당 책임
“대선 1주년이 되니 현 정부를 평가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평소 생각한 것을 말했을 뿐이다. 비대위원으로 있을 때도 문제제기를 많이 했다.”
▼ 2013년 말 대학가에서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학생들의 고단한 삶을 철도민영화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었지만, 요즘 보기 드물게 대자보라는 형식을 통해 문제제기를 한 게 신선했다. 그런데 여당의 대응은 답답했다. 대자보가 나왔을 때 하태경 의원은 ‘팩트 잘못’을, 홍문종 사무총장은 대자보를 쓴 주현우 씨가 노동당(옛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지적했다. 대자보 내용과 글쓴이를 부정하는 식의 대응은 ‘올드’해 보였다. 설령 대자보에 일부 팩트가 틀렸다 하더라도, 보수를 지지한 학생도 누구나 반박 대자보를 붙일 수 있게 해 토론하면 될 문제였다. 보수적 가치를 지닌 학생도 결코 적지 않다. 그들로 하여금 제대로 의사 표명을 하게 했어야 한다. 장기판이나 토론장에서 일대일로 맞붙었다면 팩트 잘못을 지적할 순 있다. 대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민영화 막아주세요’라고 했는데 ‘민영화한 적 없다’ ‘글쓴이가 의도적’이라고 대응하면 대화 자체가 되겠나.”
▼ 대자보에도 나왔듯 철도민영화를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대치 중이다.
▼ 민영화 테두리에 갇혔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 6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2017년까지 개통 예정인 신규 노선과 코레일이 운영을 포기하는 적자노선에는 새로운 사업자의 시장 참여가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적자노선은 보조금 입찰제를 통해 민간자본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제법 잘 만든 철도산업 발전 방안을 부정하는 건가. 그러한 시스템도 허물어진 것인가. 철도산업 발전을 위해 패키지를 구성해놓고, 반사적으로 노동조합(노조) 측 주장을 반박하려다 보니 ‘민영화 계획 없다’고만 주장한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나서 ‘직을 걸고 민영화는 없다’고 반박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철도산업 발전 방안은 계속 문제가 된다.”
이 전 비대위원은 어릴 적 꿈이 철도기관사였다. 당시 서울 지하철 4호선 종착역이던 당고개역이 가까운 상계4동에 살아 철도를 늘 동경했고, 대학 졸업논문도 서울시민 교통카드 축적 데이터를 활용한 ‘서울 지하철 연구’였다. 철도동호회 활동도 열심이다.
▼ 2013년 12월 10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새누리당을 비판했는데(이 전 비대위원은 ‘국제 사회는 북한을 비웃는다. ‘인민’은 힘들어하는데, 지도자라는 자들은 최고 영도자의 심기만 생각하니…. 하지만 북한만의 이야기인지는 미지수’라고 썼다. 대선 불복 발언과 대통령 저주 발언 등으로 민주당 장하나, 양승조 의원 제명결의안 제출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비판한 것이다).
▼ 왜 그렇게 됐나.
“당을 강경파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새누리당을 연립정권이라고 생각한다. 보수 집결당이지만 온건보수가 60%, 강경보수가 20% 정도 된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에는 강경 목소리만 나온다. 그래서 한 방송에서 ‘이재오 의원이나 김용태 의원 같은 분이 강경보수에 놀라 최근 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2013년 12월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당을 위한 충정 어린 비판은 따끔하게 받아들이고 저희의 자세를 가다듬는 데 좋은 약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담벼락에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은 이후 ‘안녕하지 못합니다’ 등 관련 대자보 수십 장이 더 붙었다.
“오바마식 소통법 좀 배워라”
▼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당을 이끌어 생긴 현상인가.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만약 박 대통령이 그렇다면 논리적 모순에 빠진 거다. 박 대통령은 서슬 퍼런 이명박(MB)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고집했다. 그때 ‘이전 불가’를 외쳤다면 ‘MB정권 연장’ 프레임에 갇혔을 거다. 여당 내에서도 강단 있게 야당 구실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 자리에 올랐다. 새누리당 의원도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정쟁으로 정책 이슈가 묻혔다면 그 책임도 여당에 있다. 할 말은 해야 한다.”
▼ 비대위원일 때도 당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나는 비대위원일 때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과 함께 언론을 과도하리만치 이용했다. 경제민주화론자와 반대론자가 우리 당에 다 있었고, 당시 그 조정자가 박 위원장(박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신문 1~4면 모두가 새누리당 기사로 채워졌다. 문대성 의원 표절 문제가 있었을 때도 박 위원장이 ‘표절심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고 했지만 나는 ‘과반 의석을 잃더라도 제명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결국 제명했다. 받아들인 거다. (성폭력 문제가 제기된) 김형태 의원 제명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사설정보지에 ‘이준석이가 3, 4차례나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박 위원장을 난처하게 했다’고 나왔을까.”
▼ 결국 소통문제 같다.
“역대 대통령이 취임 후 9개월간 기자회견을 한 횟수를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11회, 이명박 전 대통령이 4회였다. 박 대통령은 2013년 3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낙마와 관련해 딱 한 번이었다. 장관과 총리까지 민영화를 안 하겠다고 하는 대신, 국민 우려가 큰 만큼 이정현 홍보수석 입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서 ‘알짜 노선 민영화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도 야당이 물고 늘어지면 발목 잡기가 되는 거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나 왕조시대 임금의 목소리는 직접 듣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시대가 다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대선 토론 때도 박 대통령은 언변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차분하고 의연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소통문제는 결국 지지도에 영향을 준다.”
▼ 오바마 대통령의 소통법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존 캐리 민주당 후보의 찬조연설을 했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버락이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롭고 정의로운 미국에선 아프리카식 이름이 내 성공의 장벽이 되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라고. 3초 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청중은 그의 말을 한 번 생각해보고 감동을 받은 거다. 그 시간이 3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딱딱하고 계몽적이다. ‘(철도)민영화 한다고 안 했습니다’고 하는데, 그럼 듣는 사람은 할 말이 없어진다. 메시지를 전달할 때 생각할 여유를 주면 좋겠다. ‘나는 맞는데 너희가 왜 그러느냐’는 일방적 스타일인데, 보수가 이걸 닮아가는 듯하다. 세련되게 표현하는 보수가 필요하다.”
외교·국방 기대치 너무 높여 놔
“대통령은 대선 전 야당이 공격했던 것을 하나씩 반증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나갔기 때문인 거 같다. 야당은 선거 전 불통, 올드보이의 귀환, 권위주의 회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 등을 이유로 박 대통령을 공격했다. 선거 전 그런 지적이 나왔다면 당선 뒤 정말 그런 지적은 듣지 않게 했어야 했다. 지도자로서 피해야 했다. 국민이 ‘야당 말이 맞았다’고 느끼게 하면 되겠나. 오히려 야당이 괜한 시비를 했다는 걸 증명하면 지지도는 더 올라간다. 나를 포함해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은 이전에 ‘야당 측 주장은 억측’이라고 방어했다. 지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 지지도 부문에서 외교·국방 분야는 성적이 좋은데.
“정치평론가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사실 나는 주저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전 외교를 잘했다지만 파헤쳐보면 문제가 있다. 외교문제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외국에 가서 영어, 중국어로 인사하고 식사했다고 하루아침에 친해지나. 그런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지 않았나. 국민의 외교 기대치를 너무 높여 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의 경착륙이 일어날 수 있다.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지지도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도발 원점 타격한다고 하지만 만약 그걸 못 하면….”
▼ 정보기술(IT) 벤처 기업가로서 창조경제에 대해 어떻게 보나(이 전 비대위원은 직원 12명을 둔 애플리케이션 개발 IT 업체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다. 2007년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들어 지금까지 대표 교사직을 맡고 있다).
“창조경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건 좋은데, 일자리 측면에선 아니다. 나도 벤처기업을 운영하지만, IT는 사람이 할 일을 기계로 대체해 효율을 내는 산업이다. 그런데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 격차)도 고려해야 한다. 나처럼 IT를 조금 아는 사람은 괜찮지만, IT 취약계층은 써먹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동네 서점과 동네 문구점이 거의 다 문을 닫았다. IT 전문가의 창업을 쉽게 만들어 인재가 모두 창업으로 몰리면, 중견 벤처기업은 구인난에 빠진다. 최근 병무청이 2014년부터 산업기능요원제도(병역특례제)에 바뀐 기준을 적용했는데, 병역특례 현역병 대상자 전원을 특성화고교와 마이스터고교 졸업생으로만 뽑도록 했다. 그러니 대학생 게임 기획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야 한다. 엔지니어를 잃어버린 회사도 많다. 창조경제 분야도 디테일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