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 PTSS 위험군의 벼랑끝 삶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을 설명하는 또 다른 말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3주 동안 만난 20명의 ‘오늘’도 이 말처럼 트라우마 사건 이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생활이 불가능한 이들
이후 악몽을 꾸고 자다 깨 소리를 질렀다. 가족들에게도 칼을 휘두르며 “죽이겠다”고 했다. 대학도 1년 만에 자퇴했다. 2010년 겨울부터는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2011년 1월에는 의사가 격리 판정을 내려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1개월간 입원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언제 자다 일어나 칼을 휘두를지, 언제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할지 몰라 겁이 난다”며 “아내와 나도 정신병이 생기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정모 씨(30)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는 2005년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중 선임들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 정 씨가 외박을 다녀온 날이면 선임들은 “성기에 물(정액)이 남아 있는지 봐야겠다”며 그의 팬티를 벗기고 국부를 카메라로 촬영했다. “여자친구 (성기) 모양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기도 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구타가 이어졌다. “(국부를 촬영한) 사진을 싸이월드, 학교 홈페이지 등에 올리겠다”고 협박도 했다. “여자 유방 같다”며 잠자는 정 씨의 가슴을 만지고 이로 깨물거나 혀로 핥았다.
이후 정 씨는 폭식으로 체중이 20kg 넘게 늘었다. 라이터로 자신의 이불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아버지와 함께 공사 현장에 나갔다가 다른 인부들 앞에서 갑자기 속옷까지 벗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직장도 몇 개월밖에 다니지 못했다. 박모 씨(63)는 45년 전 “입대하면 돈 1000만 원을 주고 제대하면 직장을 평생 갖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북파공작원 양성 부대에 입대해 3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한 뒤 10년 넘게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방황했다. 박 씨는 “술을 마시면 ‘정신이상자’처럼 행동하고 다녔다”며 “정부의 거짓말과 혹독한 훈련으로 PTSS를 겪었으니 나라에서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어선 단속 중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권오청 목포해양경찰서 경장의 사무실 책상에 약봉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권 경장은 2012년 5월 공황발작을 일으킨 이후 매일 향정신성 약을 복용하고 있다. 목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성호 대구 남부경찰서 경위(57)는 건망증이 늘었다. 민원인을 조사한 뒤 사건 기록부를 펼쳐놓고 ‘잠깐, 내가 왜 이걸 폈지’라며 한동안 멍하게 있는 때가 잦다.
박주언 계요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멍하다는 것은 제일 가벼운 해리(解離·Dissociation)현상 중 하나로 밤을 새운 후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해리현상은 정신적 충격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처럼 말과 행동을 하고 심한 경우 자기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사람은 이와 관련된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저하된다. 인간의 기억은 한 부분만 억누를 수 없기 때문에 사건 관련 기억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멍해지고 건망증이 생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억이 왜곡되는 일도 발생한다.
또 이들은 “아무도 내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모 소방장(42)은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을 해도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문의는 “이 때문에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며 “심해지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가족과 삶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트라우마 사건 대처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이라고 하며 여기서 성장은 이전까지 해왔던 적응이나 심리적 기능을 뛰어넘는 발달을 의미한다.
정의정 해군 소령(43)은 2008년 7월 7일 남부군과 북부군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한 시장에서 주민 중 한 명에게 총격을 당했다. 그 총격으로 동료 한 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한 명은 어깨에 총을 맞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정 씨는 검은 그림자들이 꿈틀대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악몽을 꿨다. 대형마트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회전의자에 앉아 몇 바퀴 돈 것처럼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억을 피하지 않았다. 스스로 ‘내가 왜 이럴까’라며 되물었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9월에는 국방부의 국방정책연구과제로 해외파병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관리방안 연구를 제안했다. 이 제안이 채택돼 정 소령은 용역연구를 했고 2013년 2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요즘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1시간씩 명상을 한다. 정 소령은 “명상을 하다 보면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다”며 “명상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부족하지만 스스로 풀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MIU 20명 인터뷰 전문
<특별취재팀>
▽팀장 하종대 부국장
▽사회부 김상수 차장, 이성호 조건희 김성모 기자
▽국제부 박현진 뉴욕특파원 박희창 기자
▽사진부 변영욱 기자
▽정치부 정성택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 박주언 계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상 검사지 결과 분석 및 자문 역할) 이강우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과 소방위, 권일용 경찰수사연수원 교수